존경보다는 존중부터 한 걸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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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경이라는 건 너무 거대한 개념이에요. 특히 한국인처럼 자존심이 강하고 도덕성에 집착하는 민족한테는 더 어려운 개념이죠. 우리는 사람으로서 감내하는 고난과 그것을 부담하는 용기있는 태도에는 존경할 수 있지만 단지 특정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존경하라고 하면 거부감이 들어요. 그 명제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당위성도 없고요.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존경의 제1원칙은 높은 도덕성이에요. 뿌리 깊은 성리학 문화의 영향이겠죠. 그런데 존경을 요구하는 한편으로, 국민을 미개한 조선인 개돼지 취급하는 (일부)의사들, 다른 직업들과 무작정 대립하고 모욕을 주는 (일부의) 모습들은, 이중적이고 위선적이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맞지 않아요.
잡설은 차치하고, 일단 존경은 너무 멀고 어려운 얘기니까, '존중'을 얘기하는게 맞다고 봐요. 한국 사회에서 존중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은 맞고,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도 맞아요. 존중에 대한 담론을 활성화시켜서 국민과 의사 간의, 서로간의 에티켓을 정하는게 먼저인 것 같아요. 쉽고 평범한 것부터 나아가는 거죠.
2.
당연히 존중은 쌍방향 모두에게 이루어져야 하고 국민에게만 (사실 의사도 국민이니까 이런 도식은 좋아하지 않지만 다른 적절한 단어가 생각이 안 나네요) 혹은 의사에게만 요구해서는 안 되는 거겠죠. 그런데 의사들은 기준치가 높아요. 이번 라끄리님의 글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고, 오르비에서 지치지 않고 매년 반복되서 논란이 되는 '선한 의사' 논쟁에서도 그렇죠. 의사들 그리고 의대생들은 극단적으로 선한 모습을 설정하고 그것을 평범한 자기들에게 요구하는 건 부당하다고 얘기하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게 옛날에는 슈바이처, 요새는 이국종이죠. 그런데 국민들이 얘기하는 건 좀더 평범한 모습들이거든요. 일상에서의 그런 평범함 속에서 당하는 서운함들이 의사들의 태도에 대해 운운하게 되는 거고요. 선하지만 무능한 의사보다 악하더라도 유능한 의사가 났다 ㅡ 그 사이의 무언가, 좀더 평범한 무언가에 대해 얘기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적당히 환자를 존중해주고 적당히 능력 있는 의사의 모습에 대해 토의하는 거죠.
3.
의사 일이 힘들면 의사 수를 늘리면 돼요. 짐을 여럿이서 나눠서 분담하는 거죠. 의대 정원을 늘리고 의사를 많이 뽑으면 되는 거죠. 실제로 지금도 OECD 기준으로 의사 수가 부족해요. 공급량이 많아지니까 자연히 의사 연봉은 내려갈 거에요. 병원에서 의사들 쥐어짜는게, 제가 알고 있기로는 저수가 문제 때문에 그래요. 수가가 낮으니까 의사들을 쥐어짜서 환자를 많이 받게 하는 거죠. 이건 사실 지극히 기업적인 방식이죠. 그런데 원래 어딜 가든 제일 부담이 큰 것이 인건비라서, 의사를 고용하는 비용이 내려가면 병원도 좋겠죠. 병원에서 쥐어짜는 것도 줄어들 테고요. 결국 의사 수를 늘리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많아요. 그런데 의사들은 이런 얘기하면 반대하잖아요. 일종의 역린 수준이고요.
물론 이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요. 사태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거죠. 보건 의료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할 거에요. 제가 생각하기로, 의사가 힘든데는 여러 요인이 있어요. 저같은 문외한에게는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첫번째는 사내문화(지나친 공부량, 꼰대문화, 경쟁과 중상모략) 두번째는 의사 정원 수 세번째는 수가 문제에요(그만큼 의사 수 문제는 중요한 요인이에요. 절대 이것을 논하지 않을 순 없어요. 의료 자체가 공급량을 제한하는 특이성 위에서 성립하기 때문에.). 그런데 이것들 중에서 세번째 수가 문제를 제외하고는 냉정하게 말해서 국민들이 책임져줄 문제는 아니에요. 책임질 수도 없는 문제고요. 그리고 1과 2를 해결하면 상당 부분의 문제가 해결돼요. 문제는, 국민한테 본인들이 초래하고 본인들이 자정해야 하는 내부에서 받은 스트레스까지 함께 토로하는데 있어요. 그것은 안타깝지만 부당한 책임전가에요.
수가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을 수 있겠죠. 오르비에서 본 것 같은데, 수가 산정을 협의하는데 의사, 정부 사이에 시민단체가 껴 들어가서 3자 구도가 된대요. 그리고 국민은 무조건 싼 게 좋으니까 정부 편을 들 거라는게 그 의사분 말씀이었던 것 같아요. 의사들이 피해의식과 박탈감에 젖는 건 국민이 무조건 싼 것만 추구하고 정부 편만 드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없잖아 있겠죠. 그렇다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녜요.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수가가 어떻게 정해지는지 모르겠지만(미국은 얘기해봤자 의미가 없어요. 보건의료 체계가 달라요. 국가가 건강보험을 관리하는 나라여야 해요. 제일 대입하기 편한 건 일본이겠죠.) 이 주장은 사실 좀 부당한 면이 있어요. 의사의 역할은 단순히 치료뿐만 아니라 예방과 적절한 메디칼 지식(여기에서 메디슨의 의미를 좀더 넓게 얘기하고 싶은데 단순한 학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기술, 제도적 지식까지 포함한 거에요. 실제로 영미권에선 이러한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고요.)의 지도까지 있어요. 이것들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하고 납득시키는 작업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에요. 그리고 '직업인'으로서의 의무이기도 하죠. 수가 문제도 1. 수가 산정 기준이 비정상적 (중요하고 힘든 건 지나치게 싸고 안 중요하고 간단한 건 비쌈)이고 2. 단가가 지나치게 낮고 이 두 가지 문제로 나눠지거든요. 2에 대해서는 너무 멀다고 하더라도 1에 대해서는 현재 사회 전체가 '부당함' 자체를 화두로 놓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설명이 들어가면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상호 존중하면서 조리있게 설득하는 의사들이 많아질 수록 이해하는 국민들도 더 많아질 거에요.
의사들이 3분 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도, 의료업 자체의 위험성(감염 등으로 사망할 확률이 항시 있음)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저수가 때문에 3분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감염 위험으로 항시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직업이다 등등.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우리 사회에 의사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게 아니에요. 다른 점에서는 아닐 수도 있지만 어떤 점에서는 의사를 존경하고 있고,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너무 경도되지 마세요. 너무 대화를 포기하지 마세요. 그 증거로 의대 입결이나 직업인식, 사회적 선호도 등은 대단히 높아요.
4.
의사는 중산층이에요. 특히 요즘처럼 양극화가 심한 사회에서는 사실 고소득층이라고 불러도 상관이 없을 정도죠. 많은 사람들이 의사들이 천 만원 정도를 가져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의대생들도 당연하게 이것을 기대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국민의 입장에서는 수가가 낮다고 본인들이 얘기하는데 어떻게 단일 직업인이 이렇게 평균적으로 높은 기대소득을 가지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어요. 실제로 이렇게 버는 직업도 잘 없고요.
물론 비보험 진료와 3분 진료가 결합되어 생긴 현상이겠죠. 이렇게 3분 진료에는 양가성이 있어요. 본인이 어쩔 수 없이 하는 면도 있지만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하는 면도 있죠.
전 의사들이 돈을 못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높은 소득을 올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대단히 정직한 거죠. 문제는 이윤을 추구하면서 환자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을 때에요. 너무 시간에 쫓기거나, 피곤에 절어있거나 권위적이거나 등등. 아픈 사람은 서럽고 예민한데, 그 예민함 속에서 나를 홀대하는 느낌이 드는 거죠. 3분 진료는 이런 점에서도 문제에요. 수가를 협의하는 국민과 의사, 정부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서비스 제공자로서 의사 한 쪽의 문제이기도 하죠. 천만원이라는 '자의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서비스의 질을 희생한다면 소비자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현재' 시점에서 너무 목표가 높은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필요하다면 기준을 낮추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5.
이것도 옛날에 본 건데 일본으로 건너간 의사들이 살기 편하대요. 환자들이 꼬박꼬박 존댓말 하고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허리 숙이면서 인사한대요. 여기까진 뭔가 그럴 듯 하죠.
그런데 일본은 한국보다 경쟁이 덜 치열해요. 의사 소득도 한국보다 낮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예의바른 일본인' 환자가 들어오는 만큼 의사도 '예의바른 일본인'이라는 거에요. 저는 저 글을 보고 나서부터 병원에서 진료받을 때랑 나올 때 허리 숙여 인사하지만,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빨리빨리 '처리'해야겠다는 느낌을 주는 의사를 만나면 아주 서운한게 사실이에요.
좀 이상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국민성이라는 것은 분명히 있어요. 미국과 한국 일본의 국민은 평균적으로 조금씩 성격이 다를 거에요. 문화가 다르니까요. 한국은 한국스러운 국민이 있는 거고 한국스러운 의사가 있는 거에요. 또 한국인이 의대생이 되고 의사가 되어 한국스러운 의료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거죠. 제일 처음에 말한 것에 대해 얘기하면, 실제로 (일부)국민만 도덕성으로 의사를 비난하는게 아니라 (일부)의사도 도덕성으로 국민을 비난해요. 양쪽이 모두 도덕에 집착하는 거죠. 결국 일정 부분 감내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 특질이 있는 거에요. 그런데 (일부)의사들은 마치 자신은 다른 선진국의 시민인양, 합리적인 채하며 국민들을 내려다보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경우는 아주 밥맛이죠. 물론 일부 의사들만 그러겠지만요. 의사와 국민의 대립도식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서 또 한 번 등장하는데 의사도 국민이라는 건 이런 맥락에서도 마찬가지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가 초래하고 우리가 바꾸어나갈 수 있는 우리의 상황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서로 대화의 장을 만들어나가는 시도가 좋은 것 같아요. 어차피 같은 사회 공동체이기 때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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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이란 워딩 다시금 깨우치고 갑니다 감사해요
이 분도 좋은 글 쓰시네요.
팔로우랑 추천 박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