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를 시작한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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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를 시작한 너에게
어때, 요즘 지내기가? 힘들진 않고?
묻기조차 조금 미안하네? 재수하는 친구들에게는 요즘이 가장 어려운 시기라는 것을 알거든…….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아침 7시에서 저녁
11시까지, 너는 사방이 꽉 막힌 밀폐공간 속에서 이미 한 번 배웠던 것들을 다시 반복하며 시간을 죽이는 동안, 따뜻한 햇볕이
도시 구석구석마다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는 계절. 정말 너를 답답하게 하는 건, 공간의 밀폐가 아니라 가늠할 수 없는 앞날의
불안인, 그런 시점.
고등학교 때 분명 너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친구가 들어간 대학이 중간고사를 끝내고 새잎이 신록을 뽐내는 캠퍼스에서 축제를 시작하는 기간.
낙방의 충격은 많이 사그러들었지만, 대신 처음 학원 종합반을 등록하면서 가졌던 굳센 각오들이 차츰 흐트러지고, 그 자리에 밑도끝도 없는 막막함이 채워지는 시간.
그래, 재수생에게 5월은 가장 잔인한 계절이야.
미안해, 뻔히 알면서 괜한 안부를 물어서. 하지만 아까 널 만났을 때, 그 말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어.
아마 지금 다시 만나더라도, 이 뻔한 질문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아.
어때, 요즘 지내기가? 힘들진 않고?
* * *
재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넌 두 가지라고 대답했지.
하나, 주위와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 둘, 자기를 관리하는 일. 이 두 가지만 아니면 다른 것은 그런대로 견딜만 하다고…….
맞아 동의해. 그 두 가지 참 어려워. 하지만 그거 알아? 이 두 가지는 재수생만의 문제는 아니야. 실은 그게 인생의 핵심이야.
고등학교 때 제법 공부를 잘 했던 네가, 바라던 ‘나’군의 대학에 떨어졌을 때, 네 자신도 부모님도 실망이 컸겠지?
그리고 다른 대학에의 진학을 포기하고 재수의 길을 선택했을 때는 내년에는 잘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을거야.
당연하지, 너는 그럴 자격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게 있어. 내년에 네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주위의 기대가 모두 충족되어 사라질까? 아닐걸?
오히려 그 때부터 더 큰 기대가 생겨날 거야. 또 시간이 지나면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가져봐. 그 땐 기대 정도가 아니야.
자기 인생뿐이 아니라 남(자식과 배우자)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걸? 책임은 기대보다 무거워, 잔인해.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런 거야.
지금 네가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과 책임은, 재수를 하건 하지 않건 네가 일생 동안 짊어져야 할 그것들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야. 다만 지금 조금 더 무겁고 부담스런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야.
자기를 관리해야 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던, 두 번째 문제말야…… 실은 그것도 마찬가지야. 평생 가지고 가야 할 화두라구.
물론 대학 간 친구들을
보면, 수업 조금 (일주일에 겨우 20시간!) 듣고 아르바이트 한다고 왔다갔다 하는 걸 보면, 햇빛 들지 않는 독서실에서 스스로와
싸워야 하는 건 너뿐이라는 생각이 들겠지. 실은 그렇지 않아. 자기관리는 모두의 문제야. 대학생에게는 물론, 대학교수인
나에게도.
* * *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 알아? 마시멜로란 초코파이 사이에 든 하얀 설탕젤리 같은 건데, 미국에서는 이걸 따로 뗴어내서 불에 살짝 구워 먹어.
정말 달콤해서 미국 어린애들이 속된 말로 레알 환장을 하지.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월터 미셸이라는 학자가 애들에게 마시멜로를 주고 “지금 먹어도 좋지만, 15분만 참으면 하나를 더 주겠다”고 했대. 어떤 애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먹었고, 다른 애들은 용케 15분을 참아서 한 개를 더 받았다는 거야.
그리고 15년이 지나서 이 아이들의 수능(SAT)성적을 추적해 봤는데…… 무슨 일이 생겼을 것 같아?
15분을 참아 마시멜로를 하나 더 받은 애들의 성적이 800점 만점에 평균 125점 이상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거야. 놀랍지 않아?
이 '만족유예' 실험은 2006년 베스트셀러가 된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에 소개되어 우리나라에서도 무척 유명해졌지.
아뭏든 나는 이 마시멜로의 교훈이 인생 성공의 핵심이라고 생각해.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할 수 있는 능력.”
이게 처음이자 끝이야. 이게 전부야. (편의상 이것을 ‘마시멜로 능력’이라고 부르자.)
김연아 선수, 정주영 회장, 김대중 대통령, 반기문 UN사무총장……
이런 사회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의 단 한 가지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해? 바로 마시멜로 능력이야.
김연아 선수의 환상적인 연기 뒤에는 셀 수 없는 시간의 연습이 있었다는 건 너도 동의하겠지.
연습이란 게 뭐야? 미래의 멋진 연기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반복하는 행동이야.
김연아를 만든 것은 한 번의 멋진 점프가 아니라, 천 번의 엉덩방아였던 거야. 물
론 재능도 있었겠지. 하지만 연습을 죽어라고 했지만 재능이 모자라서 실패하는 선수는 봤어도, 재능만 있다고 하나도 연습하지 않고
우승하는 선수는 본 적이 없어. 그러니까 김연아 선수는 마시멜로 능력이 있었기에 세계의 요정이 될 수 있었던 거야. 이건
박태환이나 장미란이나… 모든 운동선수들에게 적용되는, 예외 없는 법칙이야.
운동선수 뿐만 아니야. 존경받는 사람들 어떤 영역에서건, “오늘을 희생하면서 내일을 준비해 온” 이들이야. 김대중 대통령만 해도 그래.
그 분은 젊을 때 사형선고만 세 번을 받았고 인생의 대부분을 감옥이나 자택에서 갇혀 지냈다구. 그가 감수해야 했던 비참하고 힘든 그 수많은 ‘오늘’들을 생각해봐. 그 기간이 없었다면 대통령도 노벨 평화상도 없었을 거야. 무엇을 하건, 오늘의 희생 없이 내일의 성공은 없어.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할 수 있을까? 그래! 우리는 그걸 바로 ‘자기관리 능력’이라고 불러.
그러니까 네가 지금 밀폐된 오늘을 보내면서 고민하는 자기 관리의 문제는 인생 성공의 핵심인거야. 꼭 재수생만의 문제는 아닌 거라구.
* * *
자, 왜 내가 자네 고민을 공감해 주지는 않고, 자꾸 “재수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문제다”고 하는 것 같아?
이런 말이 무슨 위로가 될 거라고? 무심하게 말야.
너나 니 어머니는 네가 내년에 좋은 대학 합격하는 것이 제일 큰 목표겠지만, 실은 나는 아니야.
내가 너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네가 훌륭하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거야. 물
론 좋은 대학을 나오면 훌륭하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데 더 도움이 될 지도 모르지. 하지만 훌륭하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데 좋은
출신 대학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어. 뭐겠어? 말했잖아. 바로 주위와 스스로의 기대와 책임에 부응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기를 관리하는 능력이야.
아마도 길게 보면 너의 재수 경험은 그 필수적인 능력들을 키우는 시간이 될 수 있어.
지금은 1년이 늦었지만 인생 전체로 보면 결국 더 빨리 성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런 기회 말이야.
단, 네가 이 기간 동안 자기관리 능력을 향상시킬 수만 있다면 말이지.
선생이 학생에게 선입견을 갖는 건 온당치 않겠지만, 나는 재수를 한 학생들은 조금 더 높이 사는 경향이 있어.
인생의 가장 예민한 기간에 나름 깊은 좌절을 맛보았고, 그 좌절의 시기에 나태해지지 않고 ‘오늘을 희생하는’ 자기관리를 연습한 친구들이거든.
성장은 좌절에서 오는 거야. 잘 나갈 때에는 아무도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다구. 실패를 경험해야, 그 때 가서야 뭐가 문제였는지를 돌아보거든.
또 그래야 자기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는 거거든. 그래서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처절한 실패보다 어정쩡한 성공이 훨씬 더 위험해.
너는 이 인고의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바라겠지만, 잊지는 마. 지금 이 재수의 기간도 소중한 네 인생의 엄연한 일부야.
그리고 그것은 낭비된 시간이 아니라, 실은 네 인생을 평생 향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야.
재수를 하지 ‘못한’ (그들은 재수를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야. ‘못해 본’ 것이지…) 친구들보다 훨씬 풍요한 삶의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거라구.
* * *
이제 좀 위안이 돼?
하지만 위안받기는 아직 일러. 이 글이 진정 위안이 되려면 네 ‘오늘’이 변화해야 하거든. 실천하지 못하는 결심이란, 한낱 자위일 뿐이거든.
자기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란 건 말이지, 어느 날 좋은 글 읽고 느낀 게 있었다고 확! 생기는 그런 능력이 아니야. 하
루하루 조금씩 조금씩 실천해야 살짝살짝 늘어가는 그런 능력인거야. 그러니까 며칠 지나서 ‘잉여짓’ 하고 나서 셀프
콘트롤(self-control)을 잃었다고 실망하고 포기하지는 마. 그럴 때일수록 빨리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마시멜로를
생각해. 그런 하루하루가 쌓이면, 너는 단지 좋은 대학이 아니라 좋은 인생에 도착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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