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식

dj158 [372453] · MS 2011 · 쪽지

2016-01-04 00:30:29
조회수 3,337

[유대종T] 인프라는 나 자신입니다.

게시글 주소: https://dev.orbi.kr/0007403063


반갑습니다아~^^
밝은 새해, 병신년입니다.
육십간지 중 33번째이지요. 저의 생일은 참고로 3월 3일 5시 33분입니다. (생일 선물은 기프튼콘)  올해는 저의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영희가 말했다.
사실 제발 편하게 쉬러 제주도에 가고 싶어요 ㅠㅠ 겨울 바다를 보고 싶습니다. 정말 간절히..
하지만 한편 저는 새해가 뭐지? 라는 각오로 매일 매일 수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나의 새해는 2월이다!

제가 지금 개념 강의만이 아니라, 독해법 강의도 같이합니다.(레벨1 - 똑바로 서라 국어) 
즉, 남들이 레벨1,2할 부분을 저는 레벨1에 소화합니다. 개념과 독해력은 상보적 관계이기 때문이지요.
그 레벨1을 51강(트레이닝까지 하면 67강으로 잡았습니다.)으로 잡았기 때문에
개고생의 연속입니다. 
가끔 학생들이 너무 많다고 불평을 합니다. 레벨2, 레벨3은 프랙티컬한 면이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레벨 2, 3를 가볍게 (15강으로) 가져갑니다.
레벨1은 독해법의 근간을 잡기에 빡세게 가져갑니다. 
솔직히, 저는 짧은 강좌는 지금 들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짧게 가야 대세라는 이 대세에 유대종은 역턴을 시행합니다.
이럴 때일수록(고난도 국어 수능일수록) 더욱 탄탄하고 세밀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 힘들고 수능에 편하자 주의입니다. 


어찌본다면,
제 인생은 언제나 역방향이었습니다.
- 인천고라는 학교에 가지 않겠냐라는 주변의 제의에도, 아랑곳않고 학익고를 선택합니다.(웹툰 프리드로우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강하게 짐작됨ㅋㅋ). 
외진 곳이라 공부하기 편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 서울대 당시 자체 기준이, 전체 60등급 중에 4-5등급이었기 때문에 사범대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사범계 자체 합격선 7-8등급. 서울대는 기이하게도 사범대보다 인문대가 점수 합격선이 더 높았습니다. 사범대의 메리트를 서울대생들이 느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가도 교수 자리를 꿈꾸어서 간 것이겠고.) 그럼에도 학원 강사의 글은 사범대랑 다르기에 인문학으로 들어갑니다. 철학의 형식 논리와, 사고 방향이 분명 학원 강사의 취지에 맞다고 생각하였고, 반면 국어 전공만 골라서, 국어 국문과, 국어 교육과만 있는 학생들 사이에 21학점 침투해 비집고들어가서, 국어 전공 과목을 듣고, 고전시, 현대시 영역 모두 최고점을 받아 A+을 쟁취하게 됩니다. 특히 현대시는 전공생들이 서로 서로 팀을 짰기에, 저 혼자 단독으로 30P의 소논문을 짜고 이성복 시를 주제로 하여 매우 좋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철학 영역 역시 당연한 말이지만, 동양 철학, 서양 철학, 논리학, 기호 논리학을 전부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강의를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올라운드플레이어에 가깝습니다. 특별히 한 쪽 영역에 특화되어있는 강사라기보다는 두런두런하지요. 그 이유는 제가 들은 수업들의 다양성(국어+철학+심리+역사+사회,행정)에 기인합니다. 탁구,배드민턴은D+젠장 
목사님들이 신학대학만 정통으로 소화하면 세상의 이치를 알기 어렵지만 다른 학과를 나오면 좀 더 평신도들에게 잘 다가갈 수 있듯이,
저는, 철학이라는 전공이 매우 명쾌한 사고력, 즉 도구로 기능하게 해 주었고 그 안에 국어 전공 선택 수업을 부전공 수준으로 함께 병형한 것이 제게는 큰 도움이었습니다. 

- 서울대 저의 동기나 선배들은 모두 변호사, 세무사, 로스쿨 중, 중견기업 회장 아들,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신문 기자, 공기업, 대기업으로 들어갔습니다. 지인 중, 유일하게 저 혼자 학원 강사였네요. 그 목표는 1학년 때부터 확고했습니다. 제 경력에 간혹 행시1차가 적혀 있는 것은, 행시에 PSAT 국어 강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소한 지금은 친구들이 저를 부러워 합니다. 좀 더 자유롭게 사는 것 같아 보인다나 ^^;;

- 학원 강사님들은 아시겠지만 학원 강사는 인맥이 70%이상 중요합니다. 인맥으로 뽑히면 시강도 잘 안 보지만, 이력서는 얄짤 없이 시강으로 뚫어야 합니다. 학원을 판교, 분당 이매, 송도, 부천, 비타, 그리고 현재 글을 쓰고 있는 이곳까지, 단 한 번도 이력서를 쓰고 시강을 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딱 한 번 있네요. 바로 Mㅔ가.
  말 그대로 미친 야인이었죠. 300일 중 100일은 찜질방에서 지냈습니다. 소리에 예민하고 빛에 힘들어서 나중에 병을 얻었지만 치열함으로 새벽 강의를 전부 다 마감시켰습니다. 그 당시 최대 인원이 184명이었습니다. 인맥이 중요한 대세에서 저는 대세의 역방향을 시작합니다. 이력서로 다 뚫고 들어갔습니다. 학원의 미래가 어둡다고 하여, 저는 학원을 선택합니다.  
  최고 배우 중 한 명인 장혁이 엄청나게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이 정도면 괜찮은데 왜 안 될까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그러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라는 생각 자체가 문제로구나. 그 이후로 치열하게 독하게 준비하여 지금 자리에 섰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술이든 뭐든 접대를 하면 그 순간만 그들이 나를 써 줍니다. 그러나 내가 바로 서면, 내가 똑바로 서면, 그 땐 그 순간만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저는. 선택은 본인들의 몫입니다. 소위 말하는 을이 될 것이냐, 갑이 될 것이냐는 여건의 문제 이전에 나의 태도의 문제입니다. 


- 사실 어디까지 역주행할지 모르겠습니다. 설기현
새로운 시스템도 도입하고 있습니다 사실. 
현강에 4~5명당 멘토 1명씩 붙여서 아이들 관리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러 구상을 실현하려 합니다. 삼국지에 장수들 끌어모으듯 
코XX, 피XX, 현X, 희X, 수능 만점자들이 속속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자, 그럼 제가 버는 돈은 반토막 혹은 삼분지 일토막이 납니다. 와장창말년
그래도 합니다. 
'인간이 돈을 따르는' 이 시대에,
'돈이 인간을 따르게' 만드는 것이
제 삶의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제나 인간은 숭고한 목적에 이끌려야지, 돈에 이끌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온 인생 속에서 인프라는 나 자신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저는 결코 인강 강사로서 불법적인 것들을 자행하지 않을 것이고, 어떠한 유혹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자존심이자 내가 갖춘 내 인프라에 대한 나의 존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인프라와 합쳐진 여러분의 사랑 덕분에 이렇게 론칭 이후 주간 BEST 3위를 차지했습니다. 33333333~읔읔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더라고요.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 
더욱 열심히 제 인프라를 가꾸어 학생들에게 좋은 것만을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P.S 개인 쪽지가 굉장히 많이 오는데, 앞으로 제가 몸담은 곳 큐엔에이게시판에 모두 통합 관리하고 있으니 쪽지 관련은 게시판 쪽으로 부탁드립니다. 쪽지라도 제 스스로 룰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요 :) 고오오오오맙습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