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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나멘 [217736] · MS 2007 · 쪽지

2011-01-29 21: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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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강서고등학교 시절 학교 성적이 괜찮은 편이었다. 서울의 일류대학은 아니지만 중상위권 대학(경영학과)을 지원할 수 있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한양대, 한국외국어대 등을 지원했지만 해를 거듭하며 미끄러졌다. 90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재수·삼수 시절 대부분을 서울 노량진의 ‘대성학원’에서 보냈다. 당시 앉았던 좌석도 기억한다. 10열에 10번.

그런데 종합학원을 다니며 오르는 건 성적이 아니었다. 당구장에서 당구대를 잡는 시간이 늘다보니 자연스럽게 ‘당구 숫자’만 올라갔다. 500이라는 꿈의 경지에 이르니 ‘당구의 달인’으로 통했다. 하루는 29시간 동안 당구대를 놓지 않은 적도 있었다. 반 친구들과 당구내기를 한 것이다. 학원비, 하숙비 명목으로 어머니께 받은 100만원을 내걸고 당구 게임을 벌였다. 초반에는 가진 돈을 거의 모두 잃을 뻔했다. 갑자기 ‘끝까지 해보자’는 의욕이 불타올랐다. 29시간이 흘렀을까. 잃었던 100만원뿐만 아니라 친구들이 내기에 건 돈을 거둬들였다. 이때부터 친구들은 나에게 당구내기를 걸지 않았다.

삼수도 실패하고 92년 사수에 접어들었다. 이때부터 학업에 열중하기보다는 사회경험에 더 뜻을 뒀다. L제과에서 아르바이트로 잠깐 일했다. 영하 28도에 얼음이 꽁꽁 언 창고에 아이스크림을 옮기는 단순작업이었다. 아이스크림 이름도 기억한다. 당시 개그맨 이경규씨가 CF모델로 등장했던 ‘만리장성바’였다. 눈썹에 하얗게 서리가 끼고, 손발에 동상이 걸리기가 일쑤였다.

또 여의도 일대에서 출장 웨이터로도 일했다. 경기도 이천의 도자기 공장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하며 그릇을 포장하는 단순노동도 해봤다. 우유배달, 형광펜 꼭지달기 등 가짓수도 헤아릴 수가 없다. 그래도 아르바이트로 받은 급여는 내 주머니 속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전부 어머니께 드렸다. 비록 학업은 포기했지만 사수 때의 사회경험은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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