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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수짱 [583812] · MS 2015 · 쪽지

2015-11-16 06: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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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았던 삼수를 끝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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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이 났습니다!


여기에 처음 가입했던 것도 벌써 5년이 다 되었네요. 고1때 이런 사이트가 있더라... 얘기 들어서 처음 왔었는데, 수기도 많고 공부 자료도 많아서 새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수기를 보면서 항상 '나도 대학 합격하고 수기 써야지!' 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아요. 특히나 제 고등학교 시절은 정말 거만과 오만 그 자체라서, 수기도 '내가 잘나서 들어간거야' 라고 쓰려고 마음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참 말도 안되는 망상이지만..ㅋㅋ

전 물리학과를 가고싶었어요. 과고 입시에서 미끄러지고 일반고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서울대 물리학과를 갈 수 있다고 생각했죠. 수학이랑 물리가 너무 좋았고, 정말 그것만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아까도 말했지만, 고등학생의 저는 정말 엄청 오만했어요. 내신도 1.7점대 후반인 주제에 설카포 외엔 넣지도 않겠다! 라는 생각으로 설카포 수시만 질렀죠. 솔직히 저도 내심 안 될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같아요. 과탐도 당당하게 물2를 선택하고 잘할 수 있을거라 믿었죠.

하지만... 제가 고3이였던 당시는 롤이란 게임이 정말이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던 시절이였습니다. 성실하지도 못했던 저는 게임에 빠져버리고 말았고 결국 수능 하루 전날까지 게임 주구장창 하면서 시험장에 들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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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수능 등급입니다. 충격을 받았지만 점수를 보자마자 재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던 이상향의 점수와는 거리가 있었거든요. 6평 9평? 수능과 비슷했습니다. 재학생답게 '그래도 수능땐 뭔가 다르겠지' 란 마인드. 사실상 수학을 제외하곤 제대로 된 과목이 하나도 없는데 이런 생각을 가진 것도 우습죠. 하지만 전 그랬습니다.

재수생활을 시작하면서 강남대성 기숙학원에 들어갔어요. 여전히 그 잘난 체 나만이 옳은 척 못 버린 저는 거기서도 힘들었습니다. 사실상 저보다 훨씬 노력 많이하고 잘 하던 친구들 인정하는 것도 힘들었고 그저 그 묶인 생활이 싫었어요. 그래서 부산대성으로 갑니다. 거기선... 또 생활이 망가지죠. pc방, 집, pc방, 집... 그렇다면 롤은 잘했을까요?

저 브론즈2였습니다 ㅋㅋㅋㅋㅋ 롤 하시는 분은 알거에요. 브론즈가 얼마나 낮은지... 대충 말하면 상위 80퍼쯤 됐겠네요. 수능 등급으로 따지면 7등급 수준이죠.

하지만 어쨌든 공부에 대한 유일한 탈출구가 롤이였고 전 거기에 매몰되어서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부산대성도 9평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난 뒤에 퇴원하고 집에서 공부한다고 엄마를 설득했습니다. 독서실을 갔는데... 독서실은 아니였어요. 독서실에 있는 시간보다 pc방에 있던 시간이 더 많을만큼 전 확실히 망가졌거든요.

15수능 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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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탐을 물1 생2로 바꾼 바람에 상대적으로 잘하던 물리는 점수가 잘나왔지만, 영어랑 생2에서 심각하게 미끄러졌죠. 난이도도 너무나도 쉬웠구요.

그래! 대학이 다가 아니다. 일단 물리학과 되는데 넣자.

처음으로 생각을 비우게 됩니다. 그렇게해서 넣은 대학이 한양대학교 물리학과. 될 줄 알았어요. 입시정보 분석 사이트에서도 그런 식으로 봤었구요.

결과는 예비 4번. 2명 빠지더군요.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여행가서 예비번호 확인할 땐 '될거야...' 생각했는데, 결국 되지 않더군요. 강제 삼수...

삼수는 마음을 비웠어요. 이번엔 그냥 점수 나오는대로, 공부도 더 열심히 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자. 노력조차 하지 말자.

4월 말까지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미국가서 그냥 실컷 놀았어요. 차타고 뉴욕부터 플로리다까지 훑으며 쫙 내려갔죠. 그 때 갔던 유니버셜 스튜디오, 브로드웨이, 디즈니월드는 분명히 저한테 있어서 아주 아름답고 즐거운 추억이 되었지만 그 당시엔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때문에 알게모르게 힘들었어요.

독학재수학원이란게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즐거워 보였어요. 안되는 생활관리도 잡아주고, 내가 하고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집이랑 가까운 부산으로 다시 내려갑니다.

독재학원은 광안리에 있었어요. 그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공부하는 느낌이 남다르더라구요. 드디어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어요. 독재학원의 문제? 그런거 아닙니다. 제가 그 독재학원에서 농땡이를 부리는 방법을 찾아냈다는게 문제였죠.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나와서 pc방가기. 늦잠잔 척하면서 pc방가기. 변하지 않는 생활패턴은 절 정말 엄청나게 괴롭혔습니다.

이건 안되겠다 느낀게 7월 초. B기숙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정말 오진 불효자죠. 돈을 도대체 얼마나 써대는지... 그런데 그 기숙학원은 제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랑 많이 달랐어요. 전 강남대성과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오히려 학교와 가까웠습니다. 군대식으로 강압적인 아침체조, 허술한 관리... 너무나도 실망했어요. 3주만에 박차고 나옵니다.

집에서 독재? 상상도 할 수 없어요. 재수때 제가 얼마나 망가진지 알고 있고, 이번이 마지막이였기 때문에 모험을 할 입장도 아니였습니다. 결국 그냥 H학원에 갑니다. 그 학원이 좋아서? 신설이라서? 그런거 다 필요없었어요. '친구가 없는 지역의 생활관리 되는 학원' 이라는 명제에 부합한 학원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중에 알고보니 꽤나 좋은 학원이긴 했더군요.

전 여기서 몇 가지 명제를 세웁니다.

친구를 만들지 말자. 난 친구가 있으면 너무나도 쉽게 망가지는 스타일이다.

일요일은 좀 푹 쉬자. 어차피 게임을 내가 안할리가 없다. 할거면 차라리 당당하게 어떤 날을 골라서 하자.

고승덕 모드라고 불리는 그것-그것은 절대 하지 말자. 나 주제에 가능할 리가 없다.

정말 이건 철저하게 지킨 듯해요. 공부를 하는 듯 안하는 듯 물 흐르는대로 그저 휩쓸려가는. 그런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10월 말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전 할아버지랑 10년 넘게 같이 살았고 같은 방도 썼었기에 그 의미가 특별했어요. 수능 막바지에 3일 공백. 일반적인 수험생이라면 이거에 큰 압박감을 느낄 만 하지만 저에게 있어선 '남은 기간 일요일에만 조금 공부하면 메꿀 수 있겠네'. 이런 시간 배분이 좀 더 심적 안정감을 잡아준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고 진짜 일요일에 공부한건 아님 ㅎㅎ 절대 안했음

막판까지 이 흐름을 끊고싶지 않아서 수능도 서울에서 쳤습니다. 서울 공기도 탁하고 사람 정도 없는 것같고 그닥 호감가는 도시는 아니였지만 그래도 남았어요.

세종고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그나저나 그 학교 시설 정말 좋던데요 교실도 크고!

자리에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꼭 잘 칠 필요 없다, 그냥 적당히 모의고사 점수 정도만 나오자, (모의고사는 360~370 사이였어요. 끝까지 점수 잘 안나왔음.)

1교시 국어. 어려웠습니다. 문제가 애매하고 힘들었어요. 보통 제가 국어 하나를 전부 다 푸는데 대략 35분~40분정도 걸립니다. 물론 그렇게 풀고 꼭 한두문제 틀리긴 하죠. 그런데 수능때 일부러 속도를 늦추자... 늦추자... 이생각으로 정말 글자 하나하나 꼼꼼하게 50분 써서 다 풀었어요. 남은 시간도 다 채우고요. 이게 당연해 보일수도 있지만 저한텐 일종의 혁신이였습니다.

2교시 수학. 29번이 안풀립니다. 풀이 방법은 알겠는데, 계산이 너무 안맞아요. 당황해서 그런지 벡터 내적값이 계속 다릅니다. 그래도 풀다보면 대충 50 근처라는 건 알 수 있어요. 크기 예상이 가능하니까요. 16이 곱해져있으면 보통 답이 41이겠지! 이런 생각으로 그냥 41 찍었습니다. 물론 틀렸구요. 다행인건 이 문제에 대해서 큰 시간을 쓰지 않고 나머지 검토한 덕분에 4번 계산실수한걸 잡아냈다는 것.

3교시 영어. 듣기 왜이렇게 빠르죠? 다행히 전 이미 덱스터와 왕좌의 게임과 빅뱅 이론과 사우스파크 등으로 완전무장된 상태. 재수할 때의 일탈이 좋은 점도 있더군요.

4교시엔 진이 빠졌지만 항상 생각했습니다. 내가 과학때문에 재수한거다. 과학때문에 삼수한거다. 과학 망치면 큰일난다. 물론 수능을 굳이 잘 칠 필요는 없지만 또 이거때문에 사수하긴 싫다.
그리고 믿었던 물리에서 4문제 틀렸죠. 뭐 사실 후회는 없습니다. 아쉽긴 하지만요.

수능을 다 치고 나서 나오는 길에 너무 느낌이 안좋았어요. 후련한 마음도 생각보다 없고 그냥 너무 망친 것같은 느낌. 메기기도 싫어서 그냥 또 서울에 살던 친구 만나서 술마시고, 잤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 일은 이투스에 점수 입력하기. 이게 좋은점이, 문제 하나 나갈때마다 느껴지는 그 심장 쫄깃함이 없다는 점. 그게 전 너무 싫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답 한번에 입력하고 점수 봤습니다.

국어 슬며시 보니까 100점. 두근두근 하더라구요. 느낌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시험 점수가 100점.
수학 하나 확실히 못 풀었는데 점수 96점. 아쉬웠지만 이건 제 실력이 이 수준이라고 인정할 수 있었기에 괜찮았습니다.
영어 그렇게나 망치고 말아먹은 것 같았던 영어가 97점. 42번 틀렸던데... 사실 priceless가 답이 아닌 거 알고 있었는데 무언가에 홀린 듯 그걸 답으로 찍었네요.
과학 물리 38점. 심쿵했습니다. 물리 올림피아드까지 친 놈이 물리1을 38점 맞고... 솔직히 정지에너지 그거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틀렸으니까 그럼!
생2... 모의고사에선 늘 4등급~5등급, 수능땐 운좋게 3등급 나오던 그 놈이 50점. 이거 때문에 너무 기뻤습니다. 항상 발목을 잡던 놈이 다 맞았어요. 사실 18번 20번 어거지로, 그냥 'ㄴ을 맞다고 가정하고 풀자 시간 부족하니까' 했는데 운좋게 다 ㄴ이 맞았고 그래서 2번을 찍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네요.

최종적으로 나온 등급이 11112. 논술 최저 맞췄을 뿐더러 설공은 갈 수 있을만하다고 여겨져서 기쁩니다. 삼수 보람이 드디어 나오다니! 행복하네요.

결론은 그겁니다. 강박관념 가지지 말고, 자신이 노는 스타일이면 차라리 휴일을 정기적으로 만들고 실컷 놀자. 그리고 공부 고승덕마냥 너무 열중해서 하지 말자 독이 된다. 이 교훈을 삼수하면서 얻었다고 생각해요.

두서없네요...ㅋㅋ 뭔가 좀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삼수 수기 웹툰으로도 그려보고 싶었는데 그건 나중에 진짜 논술로 울대의대 합격하면 해볼게요. 아직은 비루한 삼수생 신분이 여전하니까요. 덧글로 질문 받을게요. 저한테 궁금한 거 물어보셔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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