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정성들여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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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이 되어 버린 현역’을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수능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이감과 킬링캠프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실모의 병이오.
나는 또 평가원과 수험생활을 설계하오. 평가기법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 집단말이오. 이런 평가원 의도의 반 — 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 — 만을 영수하는 수험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수험 생활의 제행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끔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굿바이.
(중략)
나는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고등학교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나는 거기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내 공부해 온 열두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너는 대학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예비고3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예비고3은 참 잘들도 생겼다. 문과는 문과대로 이과는 이과대로 다 싱싱하니 보기 좋았다. 내려 비치는 오월 햇살에 예비고3들은 입시 커뮤에 집수능 결과를 내려뜨렸다. 집수능 결과는 메디컬 서연고를 뚫는 흉내를 낸다. 나는 이 집수능 결과들을 헤어 보기도 하면서 굽힌 허리를 좀처럼 펴지 않았다. 등이 따뜻하다.
나는 또 오르비 모아보기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이 똑 쓰레기통 속 예비고3의 11모 성적표처럼 흐늑흐늑 허우적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들을 못한다. 나는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 들어가는 몸뚱이를 끌고 그 오르비 모아보기 속으로 섞여 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
나서서 나는 또 문득 생각하여 보았다. 이 발길이 지금 어디로 향하여 가는 것인가를…… 그때 내 눈앞에는 평가원의 모가지가 벼락처럼 내려 떨어졌다. 높은 모평성적과 낮은 수능성적.
우리들은 서로 오해하고 있느니라. 설마 평가원이 높은 6평 9평 성적으로 나를 속여왔을까? 나는 그것을 믿을 수는 없다. 평가원이 대체 그럴 까닭이 없을 것이니, 그러면 나는 날밤을 새면서 평가원 욕만을 하였나? 정말이지 아니다.
우리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나 평가원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평가원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실모와 교제와 수능샤프와 화이트와 컴싸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수능대박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올해는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고3생활 지나가듯 번뜩였다.
나는 오르비를 끄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이라도 날아보자꾸나.
한 번만 더 수능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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