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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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는 대표적인 고유어 중 하나인데 어감이 참 예쁘다. '시나브로'의 어원은 밝혀진 바가 없고 단일어로 분류되지만 어원을 어떻게든 찾으려고 노력을 해 봤다

ㄴ큰사전(1957)
큰사전에는 '시나브로', '시나므로', '시납으로'가 올라와 있다.

ㄴ우리말샘
국국원이 운영하는 우리말샘에 '시나브로'의 방언형이 나와 있다. 여기서 충청의 '시적부적'은 '흐지부지'의 방언형으로도 올라와 있는데 남부 방언의 특징인 ㅎ 구개음화로 설명이 될 듯하니 '시나브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전남의 '서나서나'와 '순아순아'는 첩어 즉 부사성 어근이 반복되어 부사로 쓰인다고 분석할 수 있으며 '서나'와 '순아[수나]'의 발음상 유사성을 보면 아마 '서나'가 천천히, 조금씩을 의미하는 어근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다른 방언에서 ㅁ이 보이는 꼴이 많은데 '시나메'와 '시나미', '시남없이' 등을 보면 어근 '*시남'을 상정할 수 있고 이 '*시남'이 전남에선 '*서남'이 되고 첩어가 되는 과정에서 '*서남서남'의 ㅁ이 발음의 편의를 위해 생략되었다고 보면 꽤나 잘 맞아떨어진다. '시나미'는 '*시남'에 부파접 '-이'가 붙었다 볼 수 있고, '시나메'는 '시나미'의 제3음절 '미'가 변형되었다고 보면 된다. '거기'나 '저기'가 강원 방언에서는 '거게', '저게'로 쓰인다는 점에서 ㅣ는 ㅔ로 변했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시남없이'는 의미적으로 '시남이 없이' 정도로 해석이 되어야 하나 아까 '*시남'을 '천천히, 조금씩'을 뜻하는 어근으로 보았기에 '시남없이'는 오히려 '시나브로'의 반대 의미가 된다. 이건 이거대로 문제다.
그리고 '시나부로'라는 전남 방언과 '시이므로'라는 함남 방언, 그리고 큰사전의 '시납으로'를 보면 '시납/시남'과 '으로'로 떼어낼 수 있는데 '으로'는 조사지만 그 구성이 흔히 하나의 부사로 어휘화되기도 한다. '시납'과 '시남'을 하나의 어근으로 볼 이유가 더 생겼다.
여기서 '시납'을 '절에 시주하는 일'을 뜻하는 '시납(施納)'으로 보기도 하는데 절에 시주하는 양은 얼마 되지 않지만 모이다 보면 많은 양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남없이'가 문제다. '시납'에서 왔다면 '시납'이 '시남'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과연 이 변화가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물론 ㅂ이 비음화를 거치면 ㅁ이 되고 표기법이 문란하던 근대 때는 비음화 때문에 본래 ㅂ이었던 것이 ㅁ으로 표기된 경우도 있긴 했으나 도저히 '시납'이 '시남'으로 바뀔 만한 음운론적 환경이 보이지 않는다. '시납+으로'나 '시납+이'에서 ㅂ이 넘어가고 연철된 '시나비'가 아니라 ㅂ이 모종의 이유로 모음 앞에서 비음화가 되고 '시나므로'와 '시나미'가 된다고? 말이 되지 않는다. 19세기 기록이 보이지 않아 찾을 수 있는 기록이 20세기 기록밖에 없었다. 일단 다음의 문장을 보자
"분녀는 혼자 먼저 나갔으나 시납시납 거닐어도 천수의 나오는 꼴이 보이지 않았다. 분김에 을손과 맞붙어 싸우지나 않는가."
이효석 분녀(1936)
"그러나, 칠태는 제 아무리 골을 내도 인제는 딴 도 리가 없습니다. 동리 사람들은 하나 둘 시납으로 없어 지고, 비는 쭉쭉 내립니다."
김유정 두포전(1939)
"담밑에 욱어젔든 풀닢이 시납없이 시들어가는것을 볼때마 다 인숙의 마음은 서글폈다."
심훈 직녀성(1934)
"나그네는 싫단 기색도 좋단 기색도 별로 없이 시나브로 대꾸하였다. 남편 없고 몸 붙일 곳 없다는 것을 간단히 말하고 난 뒤,"
김유정 산골 나그네(1933)
"인제 걸리면 죽는다. 그는 비슬비슬하다 어느 틈엔가 구뎅이 속으로 시나브로 없어져버린다. 볕은 다스로운 가을 향취를 풍긴다."
김유정 금 따는 콩밭(1935)
눈여겨볼 표현은 분녀의 '시납시납'이다. 동일한 표현이 반복되어 부사로 쓰이는 것은 부사성 어근의 특징이며 한자어가 이러한 형태로 부사로 쓰이지는 않는다. 이 '시납'에 '으로'가 붙으면 '시나브로'가 되고 '-이'가 붙으면 '시나비'가 될 것이며 ㅂ의 원순성의 영향을 받으면 '시나부로'가 될 것이다. '시나미'와 '시나므로'와 같은 표현은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백번 양보해서 ㅂ이 ㅁ이 된 것이라 봐도 한자어일 가능성은 적다.
개인적으로 중앙어에선 '*시납'이 쓰였는데 지방에선 '*시납'이 모종의 이유로 종성 ㅂ이 ㅁ이 된 채로 쓰였다고 보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나브로'류의 어휘가 근대국어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비교적 최근에 조어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 그렇다면 '*시납'이란 어근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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