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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읽는소년 [515854] · MS 2014 · 쪽지

2015-05-13 17: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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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드러나지 않는 독해력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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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학년도 9월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


지문

먹으로 난초를 그린 묵란화는 사군자의 하나인 난초에 관념을 투영하여 형상화한 그림으로, 여느 사군자화와 마찬가지로 군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품성을 담고 있다. 묵란화는 중국 북송 시대에 그려지기 시작하여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문인들에게 널리 퍼졌다. 문인들에게 시, 서예, 그림은 나눌 수 없는 하나였다. 이런 인식은 묵란화에도 이어져 난초를 칠 때는 글씨의 획을 그을 때와 같은 붓놀림을 구사했다. 따라서 묵란화는 문인들이 인문적 교양과 감성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다.

추사 김정희가 25세 되던 해에 그린 <석란(石蘭)>은 당시 청나라에서도 유행하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른 묵란화이다. 화면에 공간감과 입체감을 부여하는 잎새들은 가지런하면서도 완만한 곡선을 따라 늘어져 있으며, 꽃은 소담하고 정갈하게 피어 있다. 도톰한 잎과 마른 잎, 둔중한 바위와 부드러운 잎의 대비가 돋보인다. 난 잎의 조심스러운 선들에서는 단아한 품격을, 잎들 사이로 핀 꽃에서는 고상한 품위를, 묵직한 바위에서는 돈후한 인품을 느낄 수 있으며 당시 문인들의 공통적 이상이 드러난다.

평탄했던 젊은 시절과 달리 김정희의 예술 세계는 49세부터 장기간의 유배 생활을 거치면서 큰 변화를 보인다. 글씨는 맑고 단아한 서풍에서 추사체로 알려진 자유분방한 서체로 바뀌었고, 그림도 부드럽고 우아한 화풍에서 쓸쓸하고 처연한 느낌을 주는 화풍으로 바뀌어 갔다.

생을 마감하기 일 년 전인 69세 때 그렸다고 추정되는 <부작란도(不作蘭圖)>는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 준다. 담묵의 거친 갈필*로 화면 오른쪽 아래에서 시작된 몇 가닥의 잎은 왼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오른쪽으로 뒤틀리듯 구부러져 있다. 그중 유독 하나만 위로 솟구쳐 올라 허공을 가르지만, 그 잎 역시 부는 바람에 속절없이 꺾여 있다. 그 잎과 평행한 꽃대 하나, 바람에 맞서며 한 송이 꽃을 피웠다. 바람에 꺾이고, 맞서는 난초 꽃대와 꽃송이에서 세파에 시달려 쓸쓸하고 황량해진 그의 처지와 그것에 맞서는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김정희가 자신의 경험에서 느낀 세계와 묵란화의 표현 방법을 일치시켜, 문인 공통의 이상을 표출하는 관습적인 표현을 넘어 자신만의 감정을 충실히 드러낸 세계를 창출했음을 알 수 있다.

묵란화에는 종종 심정을 적어 두기도 했다. 김정희도 <부작란도>에 ‘우연히 그린 그림에서 참모습을 얻었다’고 적어 두었다. 여기서 우연히 얻은 참모습을 자신이 처한 모습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라 한다면 이때 우연이란 요행이 아니라 오랜 기간 훈련된 감성이 어느 한 순간의 계기에 의해 표출된 필연적인 우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위 글은 묵란화가 문인의 품성(교양과 감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추사 김정희의 <석란>이라는 묵란화 역시 이에 해당하는 작품으로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석란>에 관한 설명에서 대상을 묘사한 부분을 읽으면, 그것으로부터 작가인 추사 김정희의 성품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묘사로부터 김정희의 성품을 추측할 수 있다면 바로 다음 문장에서 "...단아한 품격, ...고상한 품위, ...돈후한 인품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을 바로 공감할 수 있습니다.

즉, 서두에서 묵란화가 무엇을 담고 있는지 설명한 바가 마음속에 틀을 잡고 있는 상태에서 다음 문장을 읽는다면 <석란>을 보며 추사의 인품을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을 보기 전에 이미 "가지런하면서도 완만한 곡선..., 소담하고 정갈..., 둔중한 바위와 부드러운 잎" 등을 보며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내용이 아닌데 그렇게까지 미리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 글이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수준을 높여서 어떤 지문도 잘 읽는 독해력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이 글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글은 분명히 어려운 내용이 아니지만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신이 이 글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독해력은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앞에서 '인과추론은 글을 읽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상이 강한 응집성을 구성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강한 응집성을 구성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독해력이 좋은 사람입니다. 독해력이 좋은 사람은 바로 앞 단락에서 설명한 것처럼 서두에서 분명한 상을 구성하고 그에 따라 다음 내용을 받아들입니다. 묵란화가 문인의 품성을 나타낸다는 상이 분명하기 때문에 <석란>의 경우 이런 저런 묘사가 그에 걸맞는 김정희의 품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정희가 장기간의 유배생활을 거친 이후의 작품인 <부작란도>는 <석란>과는 다른 화풍을 보여줍니다. 이때 글의 화제를 김정희의 작품세계로 생각하고 읽은 독자라면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것입니다.

 

김정희의 작품 세계

1) 석란에 드러난 김정희의 품성

2) 부작란도에 드러난 김정희의 품성

 

이런 독자는 김정희의 작품의 하위항목으로 석란, 부작란도를 넣어 둡니다. 그래서 마음속에는 색인(index)이 나열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읽은 사람은 두 작품에서 왜 김정희의 다른 성품을 볼 수 있었는지를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 이상을 알 수 있었다 해도 더 깊이있는 지식을 접할 때 설명하는 내용의 초점이나 핵심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서두에서 밝힌 바를 잘 읽은 사람은 다음과 같이 이해합니다.

 

목란화에는 작가의 품성이 담겨 있다

1) 석란의 ~한 묘사는 김정희의 ~한 품성을 나타낸다

2) 부작란도의 ~한 묘사는 김정희의 ~한 품성을 보여준다

 

이렇게 읽는 사람은 서두를 읽고 마음속에 구성한 상으로 인해 '김정희'보다 작가의 품성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석란>에 관한 설명을 읽으며 자연히 묘사에 어울리는 품성을 떠올리고 어떤 품성인지를 직접 언급할때 이를 강하게 끌어안습니다. 중요한 건 다음입니다. <부작란도>에 관한 설명을 읽을 때 미숙한 독자는 <부작란도>는 이렇구나 하고 그대로 넘어가지만, 능숙한 독자는 각각의 작품에서 다른 품성이 드러났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이점에 주목하면 그것의 이유를 찾고자 합니다. 이런 사람만이 인과추론을 하여 '장기간의 유배생활'이 그런 감정을 갖게 한 원인이었다는 것을 주지합니다. 이것은 글에서 결과를 보고 먼저 언급된 내용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후진추론(backward inference)입니다. 이와 달리 '장기간의 유배생활'을 읽고 바로 그에 맞는감정이 반영되었을 것을 예상하는 전진추론(forward inference)를 할 수도 있습니다.

 

서두에서 글의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한 바에 따라 글을 이해하면 글 내용의 부분들을 서로 긴밀하게 연결하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속에는 응집성이 강한 간결한 상이 만들어집니다. 이로써 글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추가로 심도있는 사고를 하려 할 때에 유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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