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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벌레래요 [1069334] · MS 2021 · 쪽지

2022-08-02 22: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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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메타에 올리는 내 인생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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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원래 인권변호사가 꿈이셨다.


80년대 당시는 꽤 높았던 경북대 법대를 나오셨고 졸업 이후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자신도 모 전 대통령들과 같은 인권변호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더랜다.


그러나 IMF가 터지고 진즉에 돌아가셨던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6남매를 부양하셨던 큰아버지의 출판사가 망해버렸고 결국 아버지는 사시와 함께 인권변호사의 꿈을 접으시고 생업에 뛰어드셨다.


학원 강사 등의 일을 하시며 돈을 꽤 모은 아버지는 당시 불던 IT 벤처기업 붐에 편승해 컴퓨터 관련 사업을 도전했지만 닷컴버블의 붕괴와 함께 쫄딱 망해버렸고 이후 아버지는 빚쟁이가 되어 쫓기게 되었다.





어머니는 원래 한강 이남 최대의 제과공장을 가진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셨지만 가세가 기우면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잦은 싸움을 지켜봐야만 했고 이후 외증조할머니와 함께 사셔야만 했다.


원래는 등록금마저 없어 포기하려 했던 경북대 간호대를 어떤 분의 도움으로 다니실 수 있었던 어머니는 졸업 이후 모 종합병원에서 일하시던 도중 2001년경 어느 친구에게 우리 아버지를 소개받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1여년간의 연애 끝에 2002년 결혼하셨고 이내 아파트에서 행복한 신혼을 꾸렸다.


그러나 이도 잠시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하고 아버지가 빚쟁이가 되어 쫓기게 되면서 아기였던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단칸방을 전전하며 살아야만 했다.


다행히도 빚을 모두 청산하고 재기에 성공하신 아버지는 부동산 개발업 쪽으로 방향을 트셨고 멋지게 사회에 복귀하셨다. 아니, 복귀하신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루지 못한 꿈과 잔인했던 사회의 현실은 아버지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이내 아버지는 술로 그 울분을 해소하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알콜중독자가 되셨다.




어린시절의 나는 조금 발달이 느렸던 걸 빼면 밝고 활달한 아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의식을 할 수 있는 4살 시점부터 아버지는 거의 한두달마다 폭음 이후 인사불성이 되기 시작했다.


폭음 이후의 아버지는 내가 아는 재밌고 자상한 아버지가 더이상 아니었다.


툭하면 어머니와 나에게 폭언을 내뱉기 일쑤였고 폭력적 행동도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 시절의 나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평소의 자상한 아버지를 아직 잊지 못했던 나는 아버지의 폭언과 폭행이 그저 나의 잘못인줄로만 알았다. 여기서부터 나는 점점 미쳐가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어린시절 천식을 앓았던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놀기 보다는 책을 읽는걸 더욱 좋아했다.


때로는 혼자서 망상의 나래를 펼치며 우주를 유영하는 망상을 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데 조금 문제가 있었을지도 싶지만 어쨌든 이때까지의 나는 행복했다.




2011년 유치원까지의 생활을 마치고 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2까지는 똑똑하고 착하고 예의바르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아이였다나 뭐라나.


그러나 초3이 되고 주변 아이들은 머리도 크고 어눌한데다 놀리기도 좋은 나를 조금씩 괴롭히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의 놀림을 잘 대처하지 못했던 나는 집에서 위안을 얻으려 했지만, 하필 아버지의 폭음이 또 시작되며 난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안식을 취할 수 없는 상태에 직면했다.


아이들은 나의 외모를 욕하거나 유난히 아는게 많은 나의 대화방식을 지적했다.


게다가 나는 유난히 튀는 행동을 좋아해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학교에 가거나 깔깔이를 사시사철 입는 등 "이상한" 행동을 벌이기 일쑤였다.


당연히 아이들에겐 좋은 먹잇감일수밖에.


화를 내면서도 힘이 약해 싸움도 잘 하지 못하였던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땐 거의 후배들에게도 병신소리를 듣는 전교적 외톨이가 되어있었다.


이때가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한 때였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되고 나는 이전과 달라진 내가 되고 싶었다.


최대한 옷차림을 고치고 다른 아이들이 듣는 노래를 억지로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하고 간 중학교의 첫날 배치고사 전교1등으로 입학선서를 했던 나에게 돌아온 반응은 도움반 아이같다는 말이었다.


여전히 학교에선 노는 아이들에겐 놀림받고 다른 아이들에겐 무시받았으며 심지어 나를 성추행범으로 담궈버리려는 시도까지 겪어야만 했다.


아버지의 폭행과 폭언도 점점 강도가 심해져 이제는 집에 경찰이 오거나 집에서 칼과 오함마가 등장하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그래도 어릴때부터 똑똑하다는 말을 줄곧 들었던 나의 성적은 전교 최상위권이었고 아직까진 남들도 나를 모범생이라 띄워줬다.


나 또한 내가 모범생이라는 오만한 착각에 빠져있던 중2 때 정신과에 처음으로 간 나는 그때부터 항우울제를 처방받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그냥 조금의 불안증세가 있을 뿐이니 안심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의 자기혐오는 이미 최대를 향하고 있었고 나는 결국 중증 우울증으로 다시 진단을 받아야만 했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수학이 성적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지만 1학년까지는 평균 2.04 정도의 내신을 유지하고 있었고 난 이과행을 택했다.


그리고 2학년 때 대망의 사건이 터져버렸다.


어머니께서 목디스크 수술을 받으러 서울로 홀로 올라가신 사이 아버지는 다시 폭음을 시작했다.


상상이상의 폭언과 폭행이 이어졌고 결국 그날 난 아버지를 처음으로 때렸다.


서로 흉기를 들고 대치하려던 찰나 경찰이 신고로 도착했다.


경찰들은 어쩔 수 없이 내가 나가야만 한다고 했다.


난 밤 11시에 집에서 나와 친구집에 겨우 찾아갔지만 친구는 나에게 재워주는 대신 5만원을 달라고 했다.


대판 싸우고 난 이후 결국 나는 3일을 공원에서 노숙하다 이상함을 느낀 선생님에게 모든걸 털어놓고 고모네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때 멘탈이 완전히 박살나버린 이후 공부를 놓아버렸다.


2.04의 내신은 4.5가 되었고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고3을 맞이했다.




고3이 되고는 많은 일이 있었다.


이과에서 문과로 전향한것도, 정시파이터가 된것도 고3이었다.


아직 아버지의 돌발성 폭음도 내 정신상태도 나아지진 않았다.


그러다 며칠 전 정신과 검사기록지에서 내가 아스퍼거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의 난 크게 절망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성 장애의 일종이다.


사회성을 어느정도 기를수는 있어도 완치는 불가능하다.


내가 10여년 간 남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했던 모든 건 애초에 허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보니 지금까지 내 모든 문제점이 성격을 못고치고 게으른 나의 잘못이라 생각해왔던 건 나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아직도 난 나 자신이 그닥 좋지는 않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덜었으니 이것부터 시작해나가자.


비로소 10년만에야 난 "나만의" 삶을 되찾을 수 있었으니.


매일 한발짝씩 나아간다면 언젠간 그 발자국들 하나하나가 이정표가 되어 나를 이루게 되겠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시바 술빨고 글썼나 왤캐 개판이지

걍 감성에 젖어서 쓴 뻘글이니까 즂같으면 바로 지나가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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