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에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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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 형
형의 그 '구부러진 못'같은 글자로 된 글을 땀을 흘리면서 읽었소이다. 무사히 착석하였다니 내 기억 속에 '김기림'이라는 공석이 하나 결정적으로 생겼나 보이다.
구인회는 그 후로 모이지 않았소이다. 그러나 형의 안착은 아마 그럭저럭들 다 아나 봅니다.
사실 나는 형의 웅비를 목도하고 '선제공격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울했소이다. 그것은 무슨 한 계집에 대한 질투와는 비교할 것이 못 될 것이오. 나는 그렇게까지 내 자신이 미웠고 부끄러웠소이다.
불행히―혹은 다행히 이상도 이달 하순경에는 동경 사람이 될 것 같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형의 웅비와는 부결되는 것이오.
아마 이상은(도?) 그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문학은 그만두겠지요.
〈시와 소설〉은 회원들이 모두 게을러서 글렀소이다. 그래 폐간하고 그만둘 심산이오. 2호는 회사 쪽에 내 면목이 없으니까 내 독력(獨力)으로 내 취미 잡지를 하나 만들 작정입니다.
그러든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서둘러' 원고들을 써 오면 어떤 잡지에도 지지 않는 버젓한 책을 하나 만들 작정입니다.
《기상도》는 조판이 완료되었습니다. 지금 교정 중이오니 내 눈에 교료가 되면 가본을 만들어서 보내드리겠사오니 최후 교정을 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시와 소설〉도 몇 권 한데 보내드리겠소이다.
그리고 '가벼운 글' 원고 좀 보내주시오. 좀 써먹어야겠소. 기행문? 좋지! 좀 써 보내구려!
빌어먹을 거―세상이 귀찮구려!
불행이 아니면 하루도 살 수 없는 '그런 인간'에게 행복이 오면 큰일 나오. 아마 즉사할 것이오. 협심증으로―
'일절 맹세하지 마라'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맹세하라'의 두 마디 말이 발휘하는 다채한 패러독스를 농락하면서 혼자 미고소(微苦笑)를 하여보오.
형은 어디 한번 크게 되어보시오. 인생이 또한 즐거우리다.
사날 전에 FUA 〈장미신방(薔微新房)〉이란 영화를 보았소. 충분히 좋습디다. '조촐한 행복'이 진정의 황금이란 타이틀은 아노르도 황 영화에서 보았고, '조촐한 행복'이 인생을 썩혀버린다는 타이틀은 장미의 침상에서 보았소. '아― 철학의 끝도 없는 헛됨이여!' 그랬소.
'모든 법칙을 비웃어라' '그것도 맹세하지 마라'. 나 있는 데 늘 고기덮밥을 사다 먹는 승려가 한 분 있소. 그이가 이런 소크라테스를 성가시게 구는 논리학을 내게 뙹겨주는 것이오.
소설을 쓰겠소. '우리들의 행복을 하느님께 과시해 줄 거야' 그런 해괴망측한 소설을 쓰겠다는 이야기요. 흉계지요? 가만있자! 철학 공부도 좋구려! 따분하고 따분해서 못 견딜 그따위 일생도 또한 사(死)보다는 그래도 좀 재미가 있지 않겠소?
연애라도 할까? 싱거워서? 심심해서? 스스로워서?
이 편지를 보았을 때 형은 아마 뒤이어 《기상도》의 교정을 보아야 될 것 같소.
형이 여기 있고 마음 맞는 친구끼리 모여서 조용한 '《기상도》의 밤'을 가지고 싶던 것이 퍽 유감되게 되었구려. 우리 여름에 할까? 누가 아나?
여보! 편지나 좀 하구려! 내 고독과 울적을 동정하고 싶지는 않소?
자― 운명에 순종하는 수밖에!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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