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방랑(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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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앞에서 한 여인이 해산을 하고 있다. 치골 언저리가 몹시 아프다. 팔짱을 끼듯 나는 그 애처로운 광경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팔굽 언저리는 딱딱한 책상이다. 책상 위엔 아무것도 없다.
말소리가 유리를 뚫고 맑게 울리는 시골 사투리가 되어 들려왔다. 그것들은 더없이 즐겁다. 그리고 좀 시끄럽기조차 하다.
나는 개떼한테 쫓기고 있었다. 나는 쏜살같이 달아난다. 이윽고 나의 속도는 개들의 그것보다 훨씬 뒤진다. 개들의 흙투성이 발이 내 위에 포개졌다. 무수한 체중이 나를 짓누른다. 개들은 나를 쫓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나를 밟고 넘어선 나의 전방 먼 저쪽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건 또 어쩌면 이렇게도 숱한 개의 수효란 말인가.
열차는 멈춰 있었다. 밤안개 속에 체온을 증발시키고 있었다. 턱수염인 것처럼 때때로 기관차는 뼈 돋힌 숨을 쉬었다.
차창 밖을 흘깃 내다보았더니 이건 또 유령의 나라 순사인가. 금빛 번쩍거리는 모자를 쓴 사람이 습득물 바퀴 하나를 가지고 우두커니 서 있다. 이윽고 태엽을 감기나 한 듯이 종종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의 얼굴에 어디선지 불이 옮겨 붙었는가 하자, 이미 그 모습은 무슨 방대한 어둠의 본체 속으로 빨려들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모골이 송연했다. 보아선 아니 된다. 나는 또 그 무슨 참혹한 광경을 목도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까 내 귀에 산 같은 것이 무너져 떨어졌다.
내 귀는 멀어 있었던가. 그것은 남행의 국제특급인 것 같았다. 그렇다 치더라도 내 귀는 멀어 있었던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그리고 모든 것을 남기고 또 하나의 야행열차는 야기(夜氣) 때문에 흠씬 젖은 덩치를 엇비비듯 지나쳤다.
누군가가 슬픈 음색으로 기적을 불었다. 그렇게 느껴졌다.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은 잠든 사이에 멸형(滅形)되었나 보다.
개찰구에 홀로 우두커니 기대고 있던 백의(白衣)의 사람이 에스컬레이터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빛을 번쩍거리던 사람은 다시 어디선가 나타나서 엄숙하게 거수경례를 해보였다. 나는 내심 혀를 낼름 내밀었다. 이건 혹시 장난감 기차인지도 모른다. 진짜 기차는 어딘가 내 손이 결코 닿을 수 없는 위대한 지도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그렇게 나는 생각해 보았다.
내곁의 그는 어느새 잠이 깨고 그 진도처럼 생긴 단장을 턱에 짚고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고쳐 앉은 나를 향해 지금 엇갈려 간 열차는 ‘히카리’가 분명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구말구 하듯 끄덕여 보였다. 그는 만족한 듯 그 ‘히카리’ 호의 속력이 어떻게 절륜적(絶倫的)인 것인가에 대해 그 체험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얼마나 드물게밖엔 정차하지 않는가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슈트케이스에서 사륙반절형 소책자와 담배 케이스를 꺼냈다.
만주 담배라도 들어 있나 했더니, 그것은 만주에서 샀다는 케이스였다. 그때 그의 슈트케이스의 내용이 얼마나 빈약한가를 목격하고 말았다. 그 흔해 빠진 여송연 한 개비를 나에게 권했다.
나는 그것을 피우리라. 이미 이 야행열차 속에 10년 전의 그 커다란 잎 그대로의 칙칙한 연기를 볼 수는 없다.
그들은 먼 조상의 담뱃대를 버리고 우습기 짝이 없는 궐련을 피우는 대[竹], 또는 오동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다. 그들 중 누군가는 그 맛의 미흡함과 자신의 어지간히 큰 덩치에 비해 파이프가 너무나 작은 멋쩍음으로 해서 눈에서 주루루 눈물마저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구토가 자꾸만 치밀어 목은 좌로 향하고 우로 향했다. 무거운 짐짝 같은 두통이 눈구멍 속에 있었다. 이것은 분명 불결한 공기 탓이리라. 이 불결한 공기로부터 잠시나마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승강구에 섰다. 요란한 음향이다. 철과 철이 맞부딪는 대장간 같은 소리는 고통에 넘쳐 있다. 나는 산소로만 만들어졌다고 할 수밖에 없는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이 정수리를 때리는 것만 같은 음향에 익숙하려 했던 것이다. 공기는 냉랭한 채 머리털에 엉겨 붙었다. 이마에 제법 차가운 손이 얹혀지는 것만 같았다. 사람을 초조하게 하는 이 음향에 어서 익숙했으면 좋겠다.
승강구에 멈춰 서 보았다. 몸은 좌 혹은 우였다. 아직 머리는 비슬거리고 있나 보다.
소변을 누어 보는 것도 좋겠다. 달리는 기차 위로부터 떨어지는 소변은 가루눈처럼 산산이 흩어져, 그것은 땅바닥에 가닿지도 못할 것이다.
이때 나의 등 뒤에서 차량과 차량과의 접속해 있는 부분의 복잡한 기계를 만지작거리는 사람이 있다. 차장일 테지.
그렇다하더라도 익숙한 손짓이다. 나는 소변을 보면서 귀찮은 일은 그만 잊어버리기로 했다.
언제까지나 무엇을 저렇게 만지작거리는 것일까. 고장이 난 것일까. 그런 일이 있어서야 어디 되겠는가. 그렇더라도 너무 시간이 길다. 나는 더 참을 수가 없다. 돌아다보기로 하자. 아니 이거 아무도 없구나.
가느다란 공기 속에서 그전처럼 철과 철이 광명단(光明丹)을 가운데 끼고 맞부딪고 있다. 그리고 슬픈 소리를 내고 있다. 나의 소변은 어이없게 끝나버렸다. 이젠 이 이중(二重)―이부(二部)로 이루어진 음향에 익숙해져야 한다. 나는 먼 곳을 바라다보기로 했다.
거기엔 경치랄 것이 없다. 모든 것을 삼켜 버린 방대한 살기가 어디까지나 펼쳐져 있다. 저 안개같이 보이는 것은 실은 고열의 증기일 것이 분명하다. 이 무슨 바닥 없는 막대한 어둠일까.
들판도 삼켜졌다. 산도 풀과 나무를 짊어진 채 삼켜져 버렸다. 그리고 공기도, 보아하니 그것은 평면처럼 얄팍한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입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헤아릴 수 없는 심원한 거리를 그득히 담고 있다. 그 심원한 거리 속에는 오직 공포가 있을 따름이다.
반짝이지 않는 별처럼 나의 몸은 오무러들면서 깜박거리고 있었다. 이미 이것은 눈물과 같은 희미한 호흡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나는 핸들을 꽉 붙잡고 있다. 차가운 것이 흐르고 있다. 나는 그것을 놓을 수는 없다―저 막대한 공포와 횡포의 아주 초입은 역시 조그마한 초원, 그것은 계절의 자잘한 꽃마저 피우고 있는, 목초가 있는 약간의 땅인 것 같다.
실상 일전에 이 열차의 등불 있는 생명에 매달리려고 필사의 아우성을 치면서―그것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하다.
저기 멈춰 서자. 메마른 한 그루의 나무가 있으면 그것에 산책자이듯이 기대서자. 거창한 동공이 내 위에 쏟아진다. 나는 그것에 놀라면 안 된다.
아름다운 시를 상기한다. 또는 범할 수 없는 슬픈 시를 상기한다. 그리곤 고개를 수그리면서 외워 본다. 공포의 해소(海嘯)는 얼마쯤 멀어진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는다. 내 손에는 어느새 은빛으로 빛나는 단장이 쥐어져 있다. 그것을 가볍게 휘둘러 본다.
그리하여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이윽고 사람들은 오고야 말 것이다. 오오, 아직 이 살벌한 몽몽(濛濛)한 대기는 나를 위협하고 있다.
하현달이다. 굳이 나는 아름답다고 본다. 그것은 몹시 수척한 심각하게 표정적인, 보는 눈에도 가엾게 담배 연기로 혼탁해 있는 달이다. 함성을 지르기엔 아직 이르다. 공포의 심연 속에는 분노의 호흡이 들린다. 이젠 사람들이 와도 좋을 시기다.
왔다. 일순, 달은 분연(噴煙)을 울리고 자취를 감추었다. 사람들은 철을 운반해온 것이다. 사람들은 묵묵히 다가온다. 다만 철과 철이 알몸인 채 맞부딪고 있다. 나의 귀는 동굴처럼 그러한 음향들을 하나하나 반향한다. 아니, 이건 또 후방으로부터 오나 보다. 그렇다면 난 방향을 잘못 잡고 서 있는 것일까. 이건 반의(叛意)를 품고 있는 것 같다. 이건 단 혼자인 것 같다. 나는 아찔했다. 나는 상아처럼 차갑게 가늘어지면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거기엔 아무도 없다. 나는 끝끝내 대지(垈地)를 분실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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