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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수포네버 [503386] · MS 2014 · 쪽지

2014-11-10 10:07:03
조회수 381

을미사변 이후에도 흥선이 섭정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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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이랑 헷갈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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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발점 · 418219 · 14/11/10 10:09 · MS 2012

    고종 어릴때
    임오군란
    1차 갑오개혁

    이렇게 세번 등장하는 걸로 압니다

  • 반수포네버 · 503386 · 14/11/10 10:19 · MS 2014

    아항ㅎㅎ감사합니다

  • Peter Lynch · 433775 · 14/11/10 10:09 · MS 2012

    흥선대원군
    3번 섭정하는데
    통상수교거부 당시 10년이랑 임오군란당시 1달 그리고 1차 갑오개혁당시 4달 일거에요

  • 반수포네버 · 503386 · 14/11/10 10:19 · MS 2014

    감사합니다ㅎㅎ

  • pneumono · 459435 · 14/11/10 11:11 · MS 2013

    섭정 4번하지 않나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건가요.....??

  • pneumono · 459435 · 14/11/10 11:18 · MS 2013

    ((((1)))) 어린 아들을 앞세워 10년간 섭정
    ... 이하응은 왕이 아닌 왕의 아버지, 즉 대원군이 되었다. ... 정책 결정권을 흥선대원군에게 주어 그의 집정을 이루게 하였다. 오랫동안 세도가 양반들에게 무시당하며 절치부심 기회를 노리던 흥선대원군은 시정의 건달 행세를 하며 깨달은 당시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개혁 정책을 통해 해결해가고자 하였다.
    ...(중략)...
    강제로 물러난 탓에 흥선대원군은 정계복귀를 호시탐탐 노렸다. 그 과정은 그다지 산뜻하지 못했다. ... 흥선대원군은 ... 1882년 임오군란 때는 난도를 이끌고 궁궐에 들어가 피신한 명성황후의 사망을 공포하고 ((((2)))) 잠시 정권을 잡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잠깐의 재집권은 청나라의 힘을 빌린 명성황후의 역습으로 청나라에 납치되며 물거품이 되었다. ... 흥선대원군은 정계복귀를 꿈꾸었으며 만년의 그의 헛된 꿈은 며느리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을미사변)과 관련해 일본 공사 미우라에게 이용당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을미사변 이후 ((((4)))) 대원군은 또다시 잠시 정권을 잡지만 신변에 위험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아관파천)하여 친러파가 대두하면서 축출되었다.
    출처: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4745

    ((((3)))) 1차 갑오개혁
    따라서 1차 갑오개혁은 일본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은 상태에 서 일본에 의해 선택된 흥선 대원군과 김홍집으로 상징되는 개화파가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추진했어.
    출처: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84672&cid=47322&categoryId=47322

  • pneumono · 459435 · 14/11/10 11:19 · MS 2013

    근데 자료를 찾아보니까 1차 갑오개혁때는 정권을 잡았다는 말도 있고 계략을 꾸미다가 축출당했다는 말도 있네요... 이건 잘 모르겠어요

  • 반수포네버 · 503386 · 14/11/10 12:03 · MS 2014

    흠 잠깐 한걸로 봐야하나 골아프네요..

  • 축구신동지단 · 442800 · 14/11/10 12:34 · MS 2013

    강민성T가 고종어릴때 임오군란때 갑오1차때 을미사변이후 흥선이 집권한다 했음

  • pneumono · 459435 · 14/11/11 22:40 · MS 2013

    저도 그렇게 들었었는데 헷갈리네요 ㅠㅠ 안나왓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