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 수, 없는 너. 2.0
게시글 주소: https://dev.orbi.kr/0004466790
우연의 누적으로 마주치게 된,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는.
나에게 나와 타인들을 바라보는 관점에 무력감과 경외감을 동시에 가지게 해주었다.
닿을 수 없는 너.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
옆에 누군가가 있어도 홀로 있는 것만 같은 외로움.
이러한,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없는 문장들은 나의 머릿속에서 윙윙 울린다.
인간들은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타인은 무수하고 ‘나’는 항상 유일하다.
무수히 많은 <너>들은 결코 <나>가 될 수 없다.
너와 나의 관계 정립에 미숙한 우리들은
닿을 수 없는 너.들을 바라보는 서로서로의 섬이 되어버린다.
서로서로에게 섬이 되어버린 우리들,
우리들은 그 섬에 ‘도달’ 혹은 ‘침범’하고 싶어 한다.
선의로써든, 악의로써든. 하지만 투명한 유리벽을 주먹으로 쾅쾅 치듯,
깊은 수심의 바다 속에서 팔다리를 허우적허우적 거리듯.
우리에게 남은 ‘너’ 거울을 통해 본 ‘나’이듯,
고개를 갸웃 할 수는 있지만 무언가 모호한 존재들이다.

이러한 모호함의 기저에는, 에피소드라는 하나의 사건속의.
우연이라는 상대성에 있다고 본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무수한 선택을 한다.
오늘의 점심식사, 오늘 외출할 때 입을 코트같은 가벼운 선택부터,
사랑, 직업. 꿈 등의 무거운 선택까지.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본질적인 시작인, ‘태어남‘이라는 것을 선택하였는가?
우리가 시간 속에 존재하면서 하나하나의 사건마다
선택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탄생‘이라는 것을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
’나‘또한 선택하지 않았듯, ’너‘또한 예외는 없다.
이러한 역설이 너와 나의 관계정립에 모호함을 부여한다.
이러한 사건은 ’필연’이라는 단어보다는 ‘우연’이라는 단어에 조금 더 가까울 것이다.
우연이라 함은 보통 필연적이지 않은,
우리의 목적에 따라 선택한 사건들에 부가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들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들의 시작이라는 것이 부가적인가?
나는 이러한 질문에 답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우리네 삶의 과정 속에 미친 우연의 영향력을 생각해보자면,
그것들은 정말 부가적인 것인가? 흐르는 풍경 속에서 마주친 하나의 정보가 바꾼 나의 진로.
어린 시절의 감추어 두었던 기억들이 크고 나서 작은 일에 다시 상기되는 것.
또는 우연의 누적으로 마주친 그 혹은 그녀까지.
물론 가치관에 따라서는 이러한 경험들을 필연으로 부를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러한 관점에 반기를 들 생각은 없다.

다시, 닿을 수 없는 너.
서로서로 섬이 되어 바라보아야 하는 <너>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나의 관점에서는, 너와 나의 관계는 우연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모호하다. 필연은 아니지만 우연의 거대함. 그것이 너와 나의 관계의 핵심이다.
거대한 우연 안에서 서로에게 영향력을 주고받지만, 필연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하기에 닿을 수가 없다.
물론 그러한 필연을 믿을 수도 있고 그러한 필연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수히 만날 수밖에 없는 타인들과의 관계는,
필연보다는 우연에 뿌리를 둔 관계들이 절대 다수 일수밖에 없다.
우리는 타인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주고받지만,
항상 의도대로 흐르진 않는다.
우리가 ‘공감’이라고 부르는 감정과 ‘멘토’부르는 존재 또한 한계가 있다.
우리가 동일한 주제의 고민을 한다 하자.
하지만 너와 내가 고민하는 원인과 해답에 도달하는 과정이 모조리 같을 수 있을까.
나에게 누군가가 그럴듯한 결론을 이야기해 주었을 때,
그 결론이 나의 고민과 본질적으로 부합한다고 확신 할 수 있을까.
또한 언어의 한계, 즉 같은 단어로 상황을 설명해도 그 언어가 의미는 바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너와 나는 항상 섬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있다.
반대로, 만약 내가 너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너>와 <나>의 경계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어떤 걸그룹 노래의 가사처럼 타인이 자신의 마음에 들게 나를 재조립할 수 있다면?
이러한 유치한 가사가 아니더라도, 선의건 악의건
타인이 나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면,
<나>의 본질이 흐려진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결론이 되어버린다.

다시, 닿을 수 없는 너. 너에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은
<나>만이 <나>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범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밀실, 스스로만이 주체가 되어 결정하고 행동해야 하는 분야.
닿을 수 없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는 편한 말로 귀결 될 수도 있다.
행동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
선택하지 않은 탄생과 부모와 주위 환경. 그 이후 살아가며 마주치는 무수한 우연 혹은 필연들.
그 결과 제2의 탄생을 한 <나>는 오롯이 나 하나다.
우리세상의 모든 다양성은 <닿을 수 없는 너>들로부터 출발한다.
다양한 그들의 삶, 그들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 조차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만의 삶을 작곡하더라.
어쩌면 소위 말하는 ‘성장’의 본질은 원하지 않은 우연을 대처하는,
아름다움의 법칙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삶의 창조자이다.
그러한 창조자들이 나에게 <필연>으로 닿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우연으로 나의 무의식의 한 페이지를 작성했을 것이다.
<저희는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라던,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대응해야 하던 그들도.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무기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던 그들도.
각각의 사연과 사고과정을 지닌 나의 주변에서 맴도는 그들도.
직접적으로 접촉 할 수는 없지만 더블유의 세상에서라도 솔직해지고 진지해질 수 있는 그들도.
마네킹이어도 상관없을 풍경으로 스쳐지나가는 그들도.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박경철씨의 말처럼 ‘우연으로 점철된 삶의 결과로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그것이 내가 필연이라고 믿는 현재 모습이라면,
지금까지 내가 지나온 삶의 흔적들과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 역시 하나하나가
모두 내 삶의 소중한 역사일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의 무의식의 한 페이지 작가들이다.
혹은 당신은?
글을 읽는 <너>들 또한 이러한 사례들을 무수히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차창너머로 스쳐지나가거나 기억의 저편으로 미뤄두어서
나에게 싹틔우지 못한 하나의 우연으로 남았을 뿐이다.
이러한 무수히 많은 가능성의 우연에 싹을 틔우려면 오감이 시퍼렇게 살아 있어야한다.
항상 익숙한 과정 속에서 규격화된 삶을 살아가기 보단,
무수한 우연에 충실하여, 우연의 싹들에게 물을 주어 꽃을 피워야 한다.
그 물은 사색과 성찰 그리고 독서가 될 것이다.<
우연>이라는 씨앗과 <준비된 나>라는 영양제가 새로운 꽃을 피울 수 있다.
필연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가 결여된,
그러나 거대한 우연의 관계.
이것이 <너>와 <나> 사이의 본질이 아닐까.
그래서 <너>와 <나>의 관계는 항상 모호하기만 하다.
닿을 수는 없지만 항상 의지하며 살아갈 당신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이거 개쩌는 공부법인듯 2 1
1주마다 문제집 제끼고 오르비에 인증하기 앉아있는 시간은 같지만 공부량 ㅈㄴ 늘어난게 체감이 됨
-
윤사 코드원 샀음 1 2
윤사 개박살 났으니까 그래도 김종익 플러스 해서 코드원까지 하려고..
-
전화하고싶다 3 0
누구든좋으니까
-
작년에 2 0
2월부터 수능까지 새르비에 항상 있었던 사람이 있음
-
소아과 의사 누구였지 6 0
오르비언 ㅇㅅㅇ
-
한 달 뒤 새르비 상황 1 3
제목:진짜 다 뒤1졌냐? 2분전 조회수 8 작성자 수능 ㅈ된 설의적표현 내용:
-
???
-
수1 자작 0 1
수열 문제입니다. 거의 국밥 유형인 케이스 분류 문제에요. 오류 발견하시면...
-
아빠 안잔다 2 1
채널 돌리지 마라
-
유튜브하나보고 1 1
마저공부해야지
-
머리 안돌아가서 인강듣는데 2 0
인강도 내용이 잘 안들어옵니다.. 이럴땐 걍 자고 내일할까요?
-
저 누군지 모름? 1 1
구름과자임;;
-
죽었다. 0 0
새르비
-
치통에 4 2
잠을못자는중이에요.. 신경치료각이내
-
유빈이 진짜 야함.. 1 1
거꾸로 하면 빈유임.. 개좋네
-
이원준쌤 문학 괜찮나요? 1 0
ㅈㄱㄴ
-
햄버거 먹음 청년 2 1
슈슈버거세트
-
1회는 13,14 잘 넘기면 어찌어찌 40 중후반대까지 갈 수는 있는데 2회 <-...
-
수행평가로 책 소개하기가 있습니다. 식자경을 희망하고 있어요 책 추천해주실수 있나요
-
실모 만들면 출제자가 시간 세팅해서 딱 올려두고 시간 되면 참여자들이 맞춰서 푼...
-
수학 강사 추천 0 0
수리논술 할거라 미적, 확통, 기하 다 할건데 김범준 VS 정병호 (김범준은 기하...
-
쿠팡플레이 F1 해설위원인 윤재수 해설위원이 서울대 화학과 출신인데... 0 0
서울대 화학부 91학번인데, 1지망을 물리학과(현 물리천문학부 물리학전공) 2지망을...
-
오르비 흰바탕이 왼눈으론 뻘겋고 오른눈으론 누럼
-
차엿어요.. 3 1
...
-
3모 예상등급 0 0
33343정도…국어는 기출 풀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고 수학은 미적개념 돌리는...
-
기하러분들 0 0
서프 10번 내적으로 푸시려나
-
컨디션 좋은 상태로 독서실 다시 가고싶어
-
남은게돈뿐이구나 1 0
사람도사랑도식어감…
-
당분간 사립니다
-
난너무간지나서개명신청햇어김간지 0 0
역시난비주류야킥킥
-
지금까지 과학문제집 푼거 제외로 추천하는거있나요? 2 1
기출픽 1등급만들기 오투(개념으로씀) 완자(추가) 메가스터디 N제 자이스토리...
-
맞팔구 0 0
ㅇㅇ
-
반 단톡에서 생일인 사람들 축하해 주던데 그들은 헛걸음질을 하게 될것입니다 ㅋ
-
근데 부엉이껀 챙기면 진짜 개추 ㅋㅋ
-
화작에 2사탐 기준으로요 고대가 표점본다고하긴하던데 백분위로 대충 봐주실수있으신가요...
-
예체능 재순데 올해도 수학 유기하고 수능보면 평생 아쉬울것같아서 수학 지금 시작하고...
-
하쿠 1 0
들으샘
-
내가 그러고 있음 개찐따샛기..
-
이거 대략 현 예상 내 등급 1 2
아마 11313? 아니면 11314? 일듯. 아직 영어는 안 풀긴 했지만. 설마...
-
[Zola] 3월 교육청 대비 0 2
Zola임당. 3월 교육청 대비의 의미없음에 대해서는 아래 영상에서 말씀을...
-
사탐런 고민 3 1
현역이고 작수 물지 당일에 모의수능으로 학원가서쳤을때 2/1떴었는데 사탐런하면...
-
사실 저는 어제 생일이였습니다 왜 말하지 않았냐고요? "모두가 날 신경쓰는척 행동하는게 역겨우니까"
-
옯창 리스트 2 3
-
3월 더프 미적 4 1
21 22 30 틀려서 88점이네
-
과학 문제집중에 7 2
가장 어려운거 뭐임요??
-
야 신난다!
-
자꾸 간봐서 그렇긴 한데 3모 기간이 일정이 뭐가 많아서 아무도 안 볼거면 시간...
-
진지한 국어 질문 7 1
현역때 국어 안했고, 올해 3월에 처음 시작했습니다.선택은 화작목표는 6월에 3등급...
-
[이벤트] 2027학년도 Prologue 모의고사 1회 배포 19 12
OMR 링크:...
-
이제 심판의 시간이 다가왔다 5 2
더프 수학 채점해야 함.
와......역시 비교님은 대단하세요.
비주류의 시선. 하나.
후...많은걸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