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식

Snu Roman. [69422] · MS 2004 · 쪽지

2014-01-20 23:57:33
조회수 471

[영화:아마데우스]

게시글 주소: https://dev.orbi.kr/0004240563


어릴 적, 나는 미치도록 떨리는 마음에 아마데우스를 보았다.
 
괴기스러운 한 남자가 너무도 쉽게 피아노를 치며 한 인간을 조롱하는 모습에 천재성에 대한 경탄과 음악에 대해 배워보자는 욕망을 동시에 느꼈고, 내가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던 것도 바로 그 즈음이었다.
 
영화에서 모차르트는 천재형 인간으로, 살리에리는 노력형 인간으로 두 축을 이룬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부인은 그 둘의 대결을 관람하는 관전자 입장에서 철저하게 자기 이익을 위해 둘 사이를 오가며 그들을 더욱 부채질한다.
 
돈이 없어 재능으로 돈을 구걸하는 모차르트와,
재능이 없어 돈으로 재능을 시험하는 살리에리.
 
그 둘은 판박이인 동시에 대척점에 서 있어, 한 쪽엔 누더기같은 여유를 
한 쪽엔 고급스러운 자격지심을 심어주었다.
 
그 둘 중 누가 승자일까.
 
재능을 세상에 알고 죽은 모차르트?
그 재능을 죽이고 살아남은 살리에리?
 
영화는 말한다.
 
정신병동에 갇혀 자기만족에 사는 살리에리와, 음악에 대해 문외한일지라도 그의 음악만은 대번에 알아맞히고 흥얼거릴 정도로 사랑받고 있는 모차르트.
 
그 둘의 모습을 비교하며, 영화는 결국 노력은 없고 재능이 남는다는 뻔한 명제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지금도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지휘되지만
내가 본 살리에리 음악의 지휘는 영화 속 모습이 마지막이다.
 
그 둘은 훌륭했지만,
한국의 특급 마무리투수가 빅리그에 가자마자 초라해졌듯,
비교는 잔인하다.
 
그래서 대부분 살리에리에 가까울 수밖에 없는 관객들은 
노력이 재능을 못 당해내는 이 광경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노력에 대한 찬사를 보내면서
누구나 재능을 원하는 그 아이러니는
개인의 태도가 아니라 이제 상식의 문제가 돼버렸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Snu Roman. [69422]

쪽지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