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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파27 [774125] · MS 2017 · 쪽지

2021-10-15 13: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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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반수 궁금하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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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희파입니다.


어젯밤에 쪽지 밀린 거 처리하다가, 군반수 질문 관련 쪽지를 받고 생각이 잠시 많아져서, 회사 점심시간에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참고로 저는 수능을 6회 응시했고, 5번째와 6번째는 군대에서 쳤습니다.


이때는 대학을 가려고 친 게 아니라, 4번째까지 쳐보니 "입시를 안하면 몸이 근질" 거리고, 


날씨가 서늘해지는 가을이 다가오자 "수능의 향기가 느껴지는 바람에 기분 나쁜 설렘이 들어" 수능을 칠 수밖에 없던 듯합니다.


장수생분들 중 반수생 분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얼추 알 겁니다. 입시는 중독이거든요.


근데, 꽤 잘 봐서 국방일보에 올라오고, 그걸로 포상휴가도 받긴 했습니다.



 여튼 본론 가봅시다.


저는 육군에 속한 부대에서 17, 18수능을 응시했습니다. 17수능때는 일병 5호봉, 18수능때는 말년병장이었습니다.


담양에 있는 나름대로 빡센 부대에서 지냈습니다. 사람들한테는 육군으로 안 불리긴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육군이 맞습니다. 상근 아니고 빡센 거니까 오해하지 마시길. 이거에 대해서는 더 언급 안 할게요.


2월 29일 윤달에 입대해서, 4월 7일에 수료한 후 4월 12일에 자대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이등병 때 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첫 휴가는 7월에 나갔기 때문에, 그 전에 어머니께서 면회를 오셔서 책을 챙겨주셨습니다.


김동리의 「역마」 라는 작품을 읽어보면, 어머니는 아들인 성기가 떠돌이의 삶을 살지 않기를 원하지만, 성기는 자신의 운명을 수용하며 결국 어머니에게 "엄마, 나 엿판 하나 맞춰 주."[= 떠돌아다니겠다.] 고 말합니다. 이때 어머니의 아픈 마음이란 .. 여튼 이게 떠올랐습니다. 어머니한테 5번째 수능을 준비하겠다고 했을 때, 그때 저희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셨을까요. 대학을 옮기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쳐보고 싶은 거라고 설득해도, 어머니는 가슴이 찜찜하셨을 겁니다.[물론 서울대 붙으면 간다고는 했습니다.ㅎ...] 그래서 어머니가 눈물 젖은 책을 불효자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참고로 김동리의  「역마」는 제가 고3일때, 9월 모의평가에 나온 작품입니다. 13학년도 9평이니 찾아보시면 해당 대목이 있습니다.


4월 말부터 공부를 시작했는데, 머리가 벌써 굳은 느낌이 엄청 강하더라구요.

기출 내용이 얼추 기억은 나는데, 흐름 찾기 굉장히 힘들었어요.

당시 유대종t 밑에서 실장 근무를 하다가 입대했던 때인데, (2월 26일까지 일하고, 2월 29일에 입대했습니다) 고작 2달 쉬어도 글이 잘 안 읽히더라구요. 그래서 기출문제만 딥따 다시 팠습니다.

사지방 가서 인강을 키려고 해도, 자리 구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야간 연등때나 인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인강은 제 군인 월급과 입소비 등을 모아서 결제했습니다. 그때 월급 13만원이었음.


여력이 정말 안 좋았습니다. 제 생각보다 훨씬요.

집중도 정말 안됐습니다. 사회에서는 독서실 가서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었는데, 거기서는 그렇지 못했어요.

평일에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일과, 5시 - 6시에 1시간 공부할 수 있었고, 저녁 먹고 2시간 30분 정도 공부할 수 있었지만 .. 빨래하고 밀린 일 처리하고 .. 선임한테 털려보고 하다보면 공부할 시간 안 납니다.


주말이 그나마 여건이 낫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계속 방송으로 어디로 모여라 등 얘기 나오고, 비오면 배수로 뚫으러 가야합니다.

주말에도 당연히 위병소나 탄약고 근무를 서야 하니까 공부의 흐름이 툭툭 끊깁니다.


저는 계획표를 세워서 공부하는 사람인데, 이 계획이 제 뜻대로 맞아 떨어져본 적이 없습니다.

너무 변수가 많아서요. 저 일병 때인가? 선임이 롤린 추는데 왜 같이 안 추냐고 해서 그날 공부 접고, 급하게 하루종일 안무 외웠던 기억도 있습니다. 허무한 건 그 또라이가 그 진짜 롤린 추게 시키지는 않았다는거.. 하..ㅋ


수능 원서 접수는 대리인이 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수능 본다고 하면 중대장이 신경 써주긴 합니다.

수능 날짜에 꼭 휴가 나갈 수 있게 해줍니다. 그 근처에 훈련 잡혀있어도 그냥 나가게 해줍니다.

말년휴가 나가는 사람이 있어서, 휴가자 중복으로 못 나갈 거 같아도 "에이 수능 본다는 데 그냥 나가라" 해주기도 합니다. 군대에서 수능 응시는 무조건 가능해요. 벽이 없습니다.


여튼 제가 발등에 불 떨어진 건 9월입니다.

안에서 이감 모고 등을 구하기도 힘들었고, 어차피 구해도 풀 수 있는 시간이 안 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제가 선택한 건, 국수영은 기출만 미친듯이 파고, 탐구만 인강으로 해결했습니다.

이후 수능 보기 2주 전에 휴가를 잔뜩 내서, 2주동안 이감 모고 구해서 1일 1실모 했습니다. 

막판에 몰아쳐서 푸니까 좀 좋더라구요. 수학 실모는 히카 풀었고, 영어 실모는 안 풀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17수능은 상당히 잘 봤습니다. 국수영은 다 맞았으니까요. 참고로 성적표는 예전 계정이나 현장 수업때 인증 많이 했습니다.

다만 솔직히, 17수능은 과정에 비해 너무 결과가 좋았습니다. 그때서야 수능이 "기본기가 정말 탄탄하다면" 막판 스퍼트가 가능하다는 걸 알았어요. 

참고로 18수능때는 탐구가 3등급 4등급 나란히 떠서 조졌습니다.

이때는 그럴 줄 알았어요. 지진나서 수능 미뤄져서, 그때 부대 복귀하고 다시 휴가 받고 부대에서 업무 인수인계 마저 하고 그러면서 탐구공부 하나도 안했거든요.


여기까지가 상당히 러프한 군반수 스토리인데, 군반수 생각이 있으신 분들께 말씀드릴 본격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제 사례는 육군의 사례라고 생각하고 보시는 게 좋습니다. 육군 가면 아마 저렇게 많이 할 겁니다. 베이스 없고, 의지가 탄탄하지 않다면 절대 육군에서 반수하지 마세요. 여건이 안 받쳐주는 부대가 정말 많습니다. 


육군에서 행정병 하면 시간 많이 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행정병은 일과가 끝나도 일할게 많을 때가 많습니다. 작전병이나 정보병이 특히 그렇고, 사단본부나 연대본부쪽 가면 더 심각합니다. 아마 반수생 분들이 고학력을 갖고 육군에 가면 사단본부, 연대본부, 대대 작전과에서 행정병을 할 가능성이 큰데, 오히려 공부할 시간은 안 날 수도 있어요.


저는 원래 81mm 박격포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똘똘하다고 대대장이 데려가서 cp병(비서병)을 시켰어요. 대대장 따라다니면서 스케쥴 관리하고, 아침마다 운전해서 모시러 가고.(그래서 군면허부터 다시 따러감) 사단이나 다른 부대 가실 일 있으면 아침마다 모시고 등.. 커피 타는 솜씨도 덕분에 제법 늘었습니다. 이 보직 할 때 잠깐 공부할 시간이 났었어요. 다만 대대장이 교체되면서, 사건이 하나 터져서 유격대 조교로 갑니다. 그때부터 유격 조교만 쭉 하다가 전역했어요. 저는 고층(절벽)타기 조교였는데, 모형으로 된 절벽 위에서 유격병들 다 올라오기 전까지 수학 문제 풀고, 제 부사수가 알아서 다 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생각하면 짬질해서 좀 미안하긴 한데, 뭐 맛있는 거 잔뜩 사줬으니 쌤쌤 아닌가 싶습니다. 이건 공부할 시간 엄청 안 납니다.


2. 제일 좋은 건 공군입니다. 제 친구들 대다수가 공군인데, 가서 공부로 인생을 바꾼 애들이 정말 많았어요. 공부할 분위기가 잡혀있는 곳도 많았고, 독서실도 있다고 합니다. 애초에 육군은 공부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고 허송세월 시간 보내는 곳인데, 공군은 보직만 잘 맞는다면 매우 충분히 공부할 여건이 형성된다고 들었습니다. 친구 10명 넘게 공군이라, 좀 확실히 맞는 정보 같습니다. 물론 공군헌병은 절대 가지 마시길.


3. 수능 공부는 양보다 질입니다. 그래서 맨정신으로 공부하는 시간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잠을 많이 자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근데 육군은 매일 야간근무(위병소, 탄약고, 불침번, cctv, 당직부관, 상황병 등..) 서야 해서 잠이 정말 부족합니다. 근무가 1시간 30분~2시간인데, 환복하는 시간이나 교대하는 시간 등 고려해보면 결국 2시간 넘게 뺏겨서, 6시간 남짓밖에 못 잡니다. 그래서 공군이나, 육군 운전병 정도가 그나마 낫습니다.




4. 그렇다면 반수는 어떤 사람이 해야 하느냐? : 우선 할 사람은, 제가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겁니다. 그래서 이 대화가 큰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굳이”말을 해준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모두 충족한 사람만 가시길 권해요. 나머지 분들은,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이 있지만도, 너무 도박성이 강해요. 


① - 오랫동안 휴가를 나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 휴가 모아서 수능 직전에 2주 써서, 아침마다 국어 풀고, 점심마다 수학 풀고 등 스퍼트를 달려야 합니다. 이게 있어야 잘 볼 확률이 확 올라간다고 봐요. 


② - 대학을 한 군데라도 걸쳐놓은 사람. 군반수는 다른 반수보다 성공할 확률이 정말 낮은 거 같아요. 너무 방해요소가 많아서 그래요. 너무 자기 의지를 믿고 “난 대학 걸쳐놓은거 없이 배수의 진을 치고 하는 게 더 좋을거야!”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공부를 해보니 딱 히 의지랑 그거랑 상관없는 거 같아요. 누가봐도 절박한 상황이라 공부해야 하는 사람인데, 수능 직전인데도 공부 안 하는 사람 많거든요. 아마 “공부 안하면 ㅈ되는 걸 알면서도 안 하는 거”라서, 본인도 스트레스 받을 겁니다. 


③ -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 군대는 공군이 아닌 이상 공부할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고고하게 살아야 해요. 자진아싸처럼요. 


④ 기본기가 있는 사람 – 기출 3바퀴는 돌려본 적 있어야 합니다. 군대에서는 인강을 조금은 들을 수 있지만, 엄청나게 많이 듣지는 못해요. 인강으로 군대에서 개념 쌓으려고 하는 거, 글쎄요 .. 저는 힘들다고 봐요. 물론 이것도 공군은 제외. 공군은 군대에서 인강 들을 여건이 매우 괜찮다고 알고 있습니다.


⑤ 핸드폰 안 만지고, 친구들의 유혹에 강한 사람 – 저는 핸드폰을 못 쓰던 시절에 군복무를 했지만, 재작년에 예비군훈련 가보니 병사들 싹다 핸드폰 쓰더라구요. 그거 보니, 정말 공부하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저라면 아예 핸드폰을 반입 안 할거 같아요. 또한 휴가 나와서도 안 들뜨고, 친구들 안 만나고, “내 인생”을 위해서 차분하게 모의고사 풀이 스퍼트에 올인할 수 있어야 해요. 



여기 조건들은, 제 주관적인 기준 상 “군반수를 하시면 성공확률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조건 충족을 못해도 당연히 성공하실 수 있어요.

다만, 군반수를 해본 사람 입장에서, 정말 저런 분들 아니면 성공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을 해서요. 


제 조언은 여기까지입니다.

저 밀린 쪽지가 너무 많아서.. 답변이 현재는 어렵습니다.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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