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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지이제 [342942] · MS 2010 · 쪽지

2012-12-30 02: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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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반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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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년 고3

 고3이 되기 전 마지막 방학. 난 그 방학을 게임을 하는데 불태웠다. 12~2월동안 총합 약 334시간을 했다. 이게 내 실패의 출발점이었던 것 같다.
담임부터도 잘못만났다. 담임은 학생전원에게 반삭을 강요했고, 나만 따르지 않았다. '나만'
그런 환경에서 나는 반활동에 있어서 철저히 아웃사이더가 되었고, 말로 할 수 없는 고통과 외로움을 느꼈다. 그 때도 내 편에 서주신 건 
우리 엄마뿐..
 이렇게 내 고3 시작되고, 난 오기로 공부를 했다. 담임을 기필코 코를 눌러주마 다짐했다.
1학기 중간고사때 4과목을 원점수 100점맞았고, 6모평은 전교 3등을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점점 내 고3생활은 풀려나가는 듯 했다.
무엇보다 나와 함께 해준 친구들의 덕이 매우 컸다. 나랑 장난도 치고... 말도 많이 나누고... 청소도 같이 하고... 고마워 제군들
나의 언수외등급은 항상 321 이었다. 10월에 주춤하더니 수능직전의 대성모의로 자신감을 살렸다.

 그리고 나의 첫수능 11월 18일. 난 아침에 아빠차를 타면서 항상 되뇌였다. Today is the day i succeed..
 우황청심환의 과다섭취로 언어는 풀면서 졸았다. 수학은 답이 147인문제를 137로 적어냈고, 영어는 독해를 안하고 번역만 하고 있었다.
마지막 과목인 화2를 끝내면서.. "지금 내가 찍는 번호가.. 내 앞길을 찍어줄 것이고... 아.. 이게 수능인가?? 왜이렇게 허무하지??"
결과는 보나마나 참패였다. 34121  아니 뭐..? 수학이 4..? 내가 항상 제일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 과목인 수학에서, 살면서 가장 못본 점수가, 그 점수가 수능에 나오고야 말았다.
11월 18일의 밤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실망감보다 허탈함이 더 컸기 때문일까. 다음 날 난 학교에 가서 엄청나게 울었다. 나보다 슬픈 사람이 있었을 지도 있겠지만... 
아니다 난 그 때 세상에서 가장 슬펐을 것이다.

 흔한 학원 선생님과 수강생의 갑을 관계가 아닌 정말 스승과 제자로 날 아껴주시던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한 번 더 해야지.."
갈 대학이 없었다. 재수를 해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이걸 또 해야한다고..?'  하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재수뿐이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12월 말. 난 노량진 대성에 등록했다.


2.2011년 재수

 첫 출근, 고3때 같은 반이었던 애들이 여럿있었다. 추위에 떨고.. 차가워진 급식을 같이 먹고.. 머물고 있을 수록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넘쳐났다. 
첫날 부터 옥상에서 남자여자애들이 맞담배를 폈다는 얘기를 듣고 난 마음을 굳혔다. '여기는 안돼겠어. 혼자하거나 다른데 가야지'
목동종로를 갔었는데, 다항함수의 극점에서 f'(a)가 0이냐는 얘기를 듣고 또 마음을 굳혔다.
 그 뒤로 1월내내 독서실을 갔지만, 난 어느새 게을러져 있었다. 오후 3시에 가서 밤 10시가 되면 오곤했다.
 강남대성 유시험을 보았다. 재수의 메카. 강남대성이란 곳을 내가 갈 수 있을 줄 몰랐다. 그동안 쌓은게 헛짓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6시 기상. 6시 53분의 지하철 급행을 타고, 매일 7시 30분에 학원에 도착했다. 지각은 다니면서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60명 가까이 되는 큰 정원과 '강남대성의 아이들'과 함께 앉아있다는게 너무 떨렸다. 흥분되서가 아니라 쫄아서였다.
'이 아이들과도 경쟁을 해야할텐데.. 올해엔 난 살아남을 수 있을까?'
4월 월례때는 수학 반 4등을 해보기도하고, 6월부터는 수학에서 1등급이 계속 뜨기 시작했다.
 공부하는게 재밌어졌고, 사는게 재밌어졌다(?). 고등학교내내 단한번도 가지 않았던 노래방도 한달에 한번씩 가고, 책상에 엉덩이 붙이고 3~4시간 연속으로 공부하는것도 재밌었다. 정확하게는 수학공부가 재밌었다. 
 강남대성의 애들도 수업시간에 졸고, 축구를 하는 등 나가놀기를 좋아하고, 노래방도 가고, PC방도 간다는 사실을 알아가자, 난 재수학원이라는 공간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에 맘에 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때 특별히 속한 그룹도 없어서 겉돌았지만, 이번 해는 소속감이 느껴지는 그룹에 같이 껴서 공부도하고 놀기도 했다. 그래서 사는게 재밌어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의 마음을 다 주고싶은 여자도 만났다. 손도 못잡아본 3개월 간의 짧은 연애였고, 사귀는 동안에도 나를 대하는 마음이
자주 바뀌는 것 같아 항상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8월 초, 그녀의 마음은 더 이상 내게 있지 않는 듯 했고, 그녀가 말하기 미안해하거나.. 꺼려할 말을 내가 먼저 해주었다. 말은 내가 먼저했지만, 차인 것은 나이리라. 그렇게 재수하면서 여자때문에 처음으로 울어보기도 했다.
 그 후 4주 뒤에 있던 9월 모평은 언수외탐3에서 5개를 틀렸다. 빌보드에도 100위권 내에 들어가서 매우 기뻤다. 난 그때 자만을 해버렸다.
'와.. 이제 내가 경지에 이르렀구나. 올해는 진짜 대학가겠다.' 멘탈을 가다듬는데 오래걸리진 않았지만 정신차리니 10월 초였다.
 '이렇게 1년이 가는구나.. 1개월 뒤면 난 뭘하고 있을까?'
가을의 신선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교대의 운동장은 붉고 노랗게 변해갔다. 강남대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어서, 이 너머의 세상,
대학이라는 세상이 두렵기도 했다.
아마 그래서 수능이 다가올수록 강남대성을 떠난다는 느낌이 나에겐 아쉬웠던 것 같다. 나의 친구들이 항상 있고,
내가 항상 공부한 집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은 가야했다. 이런 감상에 젖은 채, 종강 후 계속 자습을 했고, 11월 9일 난 강남대성을 나왔다.

 11월 10일 아침.
그 아침이 또 오고야 말았다. 아직 해가 다 뜨지않은 6시. 재수의 수능날 아침은 다른 아침과 다른게 없다.
어제의 아침이 오늘같고, 내일 있을 아침도 오늘 같을 것이다. 근데 오늘은 수능이라는 스케줄이있다. 정말 떨린다.
'9평보다 딱 1개만 더맞자'
언어는 정말 시간을 약 1분남길 정도 빡빡하게 풀었다. 못본것같지는 않았다.
수학은 30번은 걍 모르겠어서 대충 1,2,~9 이겟거니하고 45로 찍어버렸다. 
외국어는 평소처럼 번역이아닌 독해로 풀었다.
탐구풀면서 멘붕을 좀 했다.
난 꽤 잘 봤다고 생각했다. 211112  수학에서 예상치못한곳에서 실수를 하고, 물리1 1번을 틀리는등 어이없는 실수가 있었다.
아쉬움은 남는 시험이었지만, 만족하기로 했다.
만족하는 건 아니고 만족하기로 했다. '단 한번의 기회가 있다면..'
 난 연세대에 갔다. 내가 꿈에 그리던 연세. 신촌의 독수리가 되려고 1년을 더 썼고, 난 큰 자부심이 생기게 되었다.
근데 주변애들의 의대,치대,서울대 합격 소식을 들으면 기분이 이상했다. 한편으로는,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애가 잘되서 기분좋았다. 다른 한 편으로는.. 나에 대한 실망감이 느껴졌다.
재수하면서 지각을 단 한번도 안했고, 주말에도 칼같이 1~3등으로 자습실에 갔다. 난 성실성을 빼면 시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보다 덜 한 것 같은.. 혹은 실제로 덜 했던 친구들이 나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았다.
난 나의 최선을 걸었는데, 나보다 잘본 '그들'의 시작점의 위치는 나의 최선으로 뛰어 넘을 수 없었던 걸까.
대학을 가면서도 '한 번만이라도 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3. 2012년 반수
 
 그런 마음을 안고 시작한 2012년. OT때부터 난 대학생활과 잘 맞지 않음을 알게됐다. 술자리에서 술게임하는 것도, 선배님 눈치를 봐야할 것
같은 분위기가 나에겐 너무 어색하고, 한편으로는 무섭기까지했다. 대학에서의 친구 사귐은 고등학교 때처럼 저절로, 자연스레 친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공대에서 인싸가 되려면 술을 잘 마시던가, 술게임을 잘해서 술을 잘 피하거나, 똘끼가 충만해서 남들을 즐겁게 해주는 방법 등이 있는 것 같다. 난 그 중에 어떤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친한 동기들이 여럿 생기긴 했지만, 아예 아웃사이더인 애들을 보면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이젠 24시간 하루의 전부를 내가 짜야했다. 시간표를 주는 고등학교와 달리, 여기는 시간표를 내가 만든다. 이전에는 학원수업,학교수업이라는 틀이 정해져 있어서 남는 시간만 짜면 됐지만, 이제는 모두 다 내 손에 달려있다. 모든 것이 어색했다. 그런데 인간이 그런지, 어떻게 적응을 하게 됐다. 4~5월이 되니, 대학이라는 세상도 만만해 보였다. 그냥 대학생이 될 때, 대학이라는 세상에 나가는게 두렵지 않게 됐다. 
만약 내가 30살이 되어, 직업을 갖게 될 때도 난 이번처럼 그 세상에 적응할 수 있을까?
 나의 1학기는 대학생의 생활이 아니었다. 다른 애들처럼 술자리,미팅,반활동을 거의 안했고, 학교-집을 왔다 갔다만했다. 신촌에 어떤 집이 맛있고, 어떤 집이 가성비가 쩔고, 할인은 어떤지 난 모른다. 고등학교를 다니듯, 학원을 다니듯 학교를 다녔다.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건 공학수학정도였다. 
 6월 모든 수업이 종강하고 캠퍼스를 걸어나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려는 짓이 해도 되는 걸까?' ,'나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나?'
 
 난 다시 강남대성에 들어갔다. 작년 선생님께서 아는 척을 해주시기도 하고, 아는 얼굴들도 꽤 있었다.작년과 똑같은 생활이었다. 다른건 수능까지의 D-day. 
내가 대학까지 나왔는데 수능을 또 봐야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나를 괴롭혔다. 학원 끊고 독학을 해볼까 생각도 해보고, 다시 그냥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하였다. 이상하게도 7월 중순부터는 그런생각이 사라졌다. 그런 마음을 없애기위해 다른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앉아있으니 생각이 없어지고, 다시 공부하게 됐다. 정말 신기하다. 작년의 종강할 때의 강대에 대한 그리움이 날 달래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그렇게 난 나를 굴리게 되었고, 생각할수록 수험생활이라는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시에 일찍자서 6시에 일어나고, 자습때는 내가 하고싶은대로, 내가 정한대로 공부하면 됐고 수업은 그냥 들으면 되는 것이었다. 아마 난 대학,직업, 더 큰 세상이 두려워 수험생활이라는 우물에 숨으려 들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리고 난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사는게 가장 편한 것 같다...
 신기하게도, 살면서 이런 적이 없었지만, 9월부터는 수능까지 자습시간에 단 한시간도 잠을 잔 적이 없었다. 그 전에는 9시가되면 졸리곤했는데, 처음으로 깨어있는 시간 전부를 공부로 채울 수 있었다. 그렇게 된 동기가 있지만 나만 알고 있는게 낫겠다.
 작년처럼 어김없이 가을은 찾아왔고, 내 마음은 또 다시 싱숭생숭해졌다. 점심시간에 교대에 나가 노래를 듣고있으면 또 작년 생각이 난다.
이젠 강대에 그리움보다 아련함을 느낄 것 같다.
 이번 반년은 육체적으로는 약 4~5개월이었지만,또 그래서 인내심도 덜 필요했던 것 같지만, 심정적으로는 재수할 때 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재수할 때 처럼 정말 친한 친구들이 곁에 없어서 더 많이 외로웠다. 그래서 할게 공부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더 좋은 반년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강남대성을 떠날 때는 2011년, 강대를 떠날 때의 느낌과 같았다. 하나도 달라짐 없이... 종강 전날, 마강대에 있는 친구랑 같이 밥을 먹고 작년 수능전날 갔던 자습실에서 공부하다가 서로 잘 보라고 격려하고 6시에 집에왔다. 사실 반수할 때, 재수할 때 만큼이나 뭔가 정신적 성장이 있었던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써보고싶다. 길이를 훨신 더 늘일 수 있을 것 같다.

 11월 8일 아침.
 그 아침이다. 대학을 걸어놓으면 덜 떨릴줄 알았더니, 전혀 그렇지 않다. 
'올해도 또 본다. 언제부터 수능이라는 길이 내가 걷는 유일한 길이 되었을까?'
언어는 원래 못했는데 정말 간신히 다 풀어냈다.
수학은 작년보다 어렵다고 생각했다.
영어도 작년보다 어렵다고 생각했다. 순간 독해를 안하고 번역을 하고있었지만 다시 맘잡고 독해로 풀어냈다.
탐구는 또 멘붕했다. 작년처럼. 9월 평가원때는 50 50 50이었는데...
가채점할 때는 언수외탐2 4개틀렸었는데, 맙소사. 살면서 가채점을 틀린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게 이번에 일어나고야 말았다.
수학이 몇개 더 틀린 것 같은데 92점인지 93점인지도 모르겠다.
작년보다 조금 잘 본 수준이 됐다. 살면서 본 시험중에 가장 잘 본 시험이 이번 시험인 줄 알았건만..
강대의 만점자들,언수외만점자들이 나랑 같은 반에서 나온걸 보면 기분이 작년과 다르지 않다.
같은 반에서, 같은 수업을 듣고 자습도 같이 한 애가 나보다 훨씬 잘 봤다. 근데 이젠 알겠다. 
저들과 비교해서 나에게 실망감, 패배감을 느끼기보다 2년전의 '나', 그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본다면 난 엄청난 승리를 한 것이다.
이제 원서영역을 치르고 나면 난 다른학교 대학생이 돼 있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만 가는구나'
 


 난 이렇게 3년 동안 수능이라는 길을 걸었다. 
노력만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노력만 있다고 해도 꽤 엄청난 성취를 할 수 있다.
항상 남들과 비교하며 살며, 나보다 높은 것의 뒤꽁무니만 쫓아가다보면 매일 실망감이 나에게 매달려 있을 것이다.
내가 있는 자리,위치에서 나의 최선을 다 할 때, 만족이란 것을 느끼며 불만도 없어지는 것 같다.
현역,재수까지 2년을 쓰고도 반년이나 더 써야 이런 걸 몸소 체험한 내가 불쌍하기도 하지만 이제 알았으니 됐다.
이제 내가 아는 유일한, 내가 걷는 유일한 길이었던 수능을 떠날 때가 됐다. 과외도 해보면서 수능문제는 계속 볼 생각이지만 
응시는 하지 않을 것같다.
나중에 반수했던 이번 2012년 하반기를 다시 써보고싶다. 시간이 지나면 깨우쳤던 것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혹여나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반수,재수,삼반수,삼수,사수,오수,육수,칠수,팔수,N수를 결심하신 분들
힘내세요. 수능이라는 길에서 언수외탐을 떠나 배울 것도 참 많은 것 같고, 하기로 굳게 다짐하셨다면
당신들의 미래는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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