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과외뛰던 시절 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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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는 바야흐로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살, 재수를 시작하였다.
3월까지 띵가띵가 놀아대다가 더이상 뭘 하고 놀아야 할 지 모르겠더라.
수험생활중엔 낙엽 흔들리는 것도 꿀잼이드만,
수능이 끝나는 즉시 영화고 여행이고 뭐고 그냥 싹다 지루함 그 자체였다.
아무래도 수능은 마약이 틀림없다.
- 그렇게 재수를 시작하고 맨 처음 시작한 것은 공부도, 수만휘도 아닌 오르비였다.
이래뵈도 목표가 서울대 경영학과인데 (3월 목표 서울대 / 6모 후 목표 연세대는 국롤 아님?)
수만휘는 볼 것이 못된다 최소 오르비는 봐야지
그렇게 발딛게 된 오르비에서 처음 관심을 가지고 읽은 글이 바로 과외선생님을 소개하는 글이었따.
뒤늦게 알았지만 그 게시글은 과외선생님을 광고하는, 요즘시대 언어로 뒷광고하는 게시글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파워블로거 아주머니가 쓴 대놓고 광고하는 게시글인데
사이버 어린양같은 나는 미끼에 훅~ 하고 걸려들었다.
아니 수능이 2달이면 1등급찍고 - 또 2달이면 100점 고정이라니?
언제부터 수능이 내신이었지? 내가 인생을 헛살았구나~라는 생각에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었다
그떄부터 과외 선생이란 선생은 다 연락을 해대며 op.gg 롤 챔피언 분석하는 것 마냥 과외썜 분석 놀이에 심취했다.
꿀잼이었다. 마치 암흑셰게에서 나를 구원해 줄 구세주를 만나는 기분이었거든.
그리고는 곧 나는 고속버스 냄세에 깊~게 취했다.
1주일에 3번, 하루 왕복 9시간 거리의 과외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과외비보다 버스비가 2배는 더 나왔겠다.
이걸 이제 알아버린 내 인생
- 일단 국어 수학 영어 사탐 모든 OT는 다 받았지만 수학 / 영어만 과외를 시작했다.
일단 수학은 그 16번인가? 빈칸을 맞추는 문제를 한방에 푸는 방식을 보여주며 OT를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수능에서는 그 문제에 1~5번 선지에 가/나/다에 각각 숫자가 대놓고 나왔었다.
OT에서 어마무시한 기술을 선보였는데
그 빈칸 문제 지문을 처음부터 쫙~ 읽는게 아니라, 선지에 있는 가/나/다 숫자를 빈칸에 집어넣어서 거꾸로 푸는 것이었다.
이 빈칸 꼼수에 취해 이 과외쌤은 수능평가원장 아들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한 나는 더이상 다른 수학쌤을 만날 이유가 없었다.
OT받는 내내 썜 머리 뒤에서는 광채가 쏟아지고, 손에서는 꽃냄새가 났다 (밤꽃아님)
다만 문제는 첫 과외 시간부터 시작됐다.
과외 첫 수업 2시간 내내 이 빈칸문제만 한 40개를 풀더라.
그리고 그 주 과외 숙제는 빈칸문제 풀기 + 사칙연산이었다.
한 400개 풀었지 아마
그렇게 음... 아주 파괴적인 선생님이다. 한 주에 한 스킬씩 완전 머리에 때려박아버리는구나. 난 무적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번 과외 시간에도, 그리고 다다음번 과외 시간에도 빈칸문제만 수업시간 내내 40개씩 풀었다.
그렇게 나는 매주 2번 9시간 버스타고 와리가리하며 '수학' 빈칸 문제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해 수능부터, 이 문제 선지에는 숫자가 대놓고 나오지 않았다.
- 영어 과외는 뭐... 별 기억이 없으리만큼 무난한 수업이었다.
수능문제 펴놓고 쫙~ 읊어가며 문제 푸는 스킬이라기보단 본인이 푸는 방식을 보여주고
내가 뭘 모르고, 왜 틀렸는지 알려주고...
그런데 내가 이 사람에게 과외를 받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서울대 뽕에 취해있었다.
심지어 과외를 하던 장소도 고시촌의 반지하 원룸이었는데
어린 마음이었을까? 흔하디흔한 고시촌의 전봇대마저도 내게는 진정으로 아름다워보였다.
그리고 이 양반 참 사람을 잘 다뤘었던게
자~꾸 과외중에 헛소리를 하는데 그 헛소리가 나에게는 꿀소리처럼 들렸었다.
서울대가서 인생이 바뀐 것, 소개팅하는 것, 수업이 신비롭고 즐거운 것, 미래가 창창한 것...
그리고 중간에 전화가 오는데 교수님교수님 언급하고, 무슨 창업 동아리 친구가 오는데 같이 보겠냐고 물어보고ㅋㅋㅋ
아니 이러니 서울대 뽕에 안 취할 수가 있나~
그렇게 서울대 뽕에 잔뜩 취해버린 나는 그 해 수능이 끝나고 고시촌에서 삼수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꺠달았다.
고시촌은 그냥 2호선 라인중 집값이 가장 싼 그저그런 서울의 보금자리일 뿐이라는거
서울대생이라고 신의 가호를 받고, 광채가 쏟아지는 위대한 인물들이 아니라
고등학생때 공부 열심히 했던 모범생들 뿐 이라는거
피시방 졸라리 좋아하고, 2천원짜리 컵볶이 잘 먹고, 3천원짜리 맥주먹고, 신나면 동네에서 소리도 지른다는거
전봇대에 종종 오줌도 싼다는거
- 과외뽕에 취해있던 나는 사탐도 과외를 받아볼까 생각했는데
이떄 경제쌤은 신선한 충격을 선물해준 사람이었다.
잘 살고있으려나 궁금하네
본인은 현재 5수 중이며 이제껏 성적이 가장 많이 오른 과목이 사탐이라는 것을 명분으로 과외를 뛰었다.
사실 이 부분은 만나서 알았으며 애초에 속일 의도는 없었던 것을 알았기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만나자마자 멀리 시골에서 올라 온 나에게 밖에서 보면 돈드니까 본인 집에서 보자고 하였다.
난 이런 친절한 사람이 다 있나? 생각하며 흔쾌히 그러자고 자취방이 어디냐고 했지만...
집에 들어가보니 신발이 즐비해있었다. 남녀노소 다양한 신발 구성이었다.
엄마/아빠/할머니/할아버지/여동생까지 총 여섯 식구가 살고있었던 것이다.
방 두칸 거실 한칸 있는 평범하다기보단 구성원을 생각해봤을 떄 조금은 좁지않나 싶은 집의 식구였다.
아니... 나 밖에서 봐도 되는데... 커피 내가 살게...
그리고 더 식겁했던 것은, OT하는 내내 나랑 잘 맞다고 밤에 버스타고 가면 위험하니까 자고 가라는 것이다.
.... 그래 고맙긴한데 여동생이랑 같은 방 쓰면서 나랑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면...ㅜㅜㅜㅜ
그렇게 1박했다.
아프리카 소수민족 홈스테이 하는 기분으로다가...
- 이 경제쌤은 보통 인간이 아니었다. 진짜 내 생에 만나본 사람들 중에서 말이 가~~~~장 많았다.
노홍철? 강성범? 뭐 상대가 안된다 진짜 그냥 상대가 안됨
말을 한번 시작하면 온갖 미사여구와 명사를 엮어내서 대 서사시를 시작한다.
매번 시용하는 화법이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는데
중요한 건 내 반응을 기대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A를 말하다가 내 반응과는 무관하게 A'를 말하다가 바로 A'에서 B를 말한다.
아니 내가 진짜 신기해가지고 한번은 일부러 입 한번도 안 뗴고 한 10분을 라디오 듣듯이 말하는거 들어봤다.
멈추지 않았다.
너무 신기한 나머지 여동생한테 아니 너희 오빠 원래 이렇게 말하냐고, 이렇게 말 잘하는 사람이냐고 (=많은 사람이냐고) 물었는데
원래 그렇단다.
이정도면 그냥 과외비 말고 봉사비 내가 받으면서 과외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더라.
그렇게 하루가 가고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나는 이제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뒤 짐을 쌌다.
버스 정류장까지 원치않는 동행이 이어졌고, 버스정류장까지 한 10분은 걸은 것 같은데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않는 입과 함께 듣고 또 들었다.
버스는 출발했고, 헤어질 떄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데 흔드는 손은 안 보이고 뭐라고뭐라고 또 막 말을 하는 입만 보이더라.
다시한번 보고싶다. 유튜브로 키우면 대박나지 싶은데
- 9시간동안 오갈만큼 의미있는 과외쌤은 없었다.
말이 안되지 무슨 신비로운 마법이 깃든 기술을 배우겠다고 왕복 9시간을 와리가리 하나..
총 영어는 3개월, 수학은 1개월 과외를 받았는데, 사실 9시간을 투자할만한 수업은 아니라는 것은 첫주부터 알고있었다.
하지만 내가 9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서울을 왔다갔다 한 이유는 수업 뿐만이 아니었다.
삐까뻔쩍하던 강남의 수많은 빌딩들과 외제차들
그리고 카페에 있던 이쁘고 옷 잘입는 누나들과 연예인같은 형들 그리고 내 또래들
이 모든게 내 눈에는 마치 뉴욕 맨해튼처럼 멋져보였고, 새벽 5시에 일어나 7시부터 11시반까지의 여정이 매일같이 설레였다.
그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과외받고 집에가면 밤이오는 이 생활이 나한테는 멋진 스토리를 써가는 것처럼 보이더라고
하지만 점점 현실을 깨달아가며 과외를 그만두게 되었고 시골에서 혼자 공부하다가 결심했다.
서울에 있는 독학재수학원으로 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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