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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짝 [246718] · MS 2008 · 쪽지

2012-08-15 23:26:15
조회수 550

장준하 선생, 타살의혹..

게시글 주소: https://dev.orbi.kr/0003004393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7160.html

장준하 ‘실족사’ 끝나지 않은 의혹
경사 75도, 높이 14m 암반서 굴러떨어졌다는데 외상없고 
최후 본 유일한 목격자 김용환 사고 뒤 갑자기 교사로 취직의문사위선 “규명불능” 발표

1975년 8월 장준하 선생이 숨진 뒤 37년 동안 타살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장 선생이 60·70년대 37번의 체포와 9번의 투옥을 무릅쓰며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맞섰던 숙명의 정치적 라이벌이었기 때문이다.

장 선생은 언론인으로, 야당 정치인으로 박 전 대통령과는 팽팽한 대척점에 섰다. 일제강점기인 20대 중반 젊은 시절 장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대위로, 박 전 대통령은 일제 만주군 중위로 극명히 대조되는 길을 걸었다. 장 선생은 언젠가 박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일제가 그냥 계속됐다면 너는 만주군 장교로서 독립투사들에 대한 살육을 계속했을 것이 아닌가”라고 면박준 일도 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만주군 복무와 광복 뒤 남조선노동당 가입 같은 과거를 손금 보듯 알고 있던 장 선생이 자신에 맞서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는 것을 무척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장 선생이 숨진 직후부터 실족사로 처리된 사인을 두고 의문이 제기됐다.

■ 독립투사·반독재투사 장준하 장 선생은 191 8년 평안북도 의주군 고성면 연하동에서 태어났다. 1944년 일본군의 학도병으로 중국에 파병됐으나 일본군을 탈출했다. 그의 저서 <돌베개>를 보면, 고향을 떠나면서 아내 김희숙씨에게 ‘내가 형제와 골육을 위하는 일이라면 비록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하여도 이는 원하는 바이라’는 성서 구절을 남겼다. 편지에 이 구절이 적혀 있으면 일본군에서 탈출했다는 뜻으로 알라는 귀띔도 남겼다. 그는 44년 7월 일본군 병영에서 탈출한 뒤 중국군을 거쳐 그해 11월 53명의 동지들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충칭까지 2400㎞ 길을 걸어 백범 김구 산하의 광복군에 합류했다.
광복군 장교로서 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미국 정보기관(OSS) 대원을 자원해 특수 게릴라 훈련을 받았다. 일본의 항복 뒤인 1945년 11월23일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미군 수송기로 귀국해 김구 주석의 수행비서로 일했다.

한국전쟁 때인 1953년 피난지인 부산에서 월간 <사상계>를 창간해, 50년대 이승만의 독재정치를 비판하는 데 앞장서며 당시 지식인들이 가장 주목하는 잡지로 이끌었다. <사상계>는 5·16 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 육군 소장이 대통령이 된 뒤 추진한 한-일 수교 협상이나 베트남 국군 파병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장 선생은 특히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위원회의 연사로 전국 순회강연을 하면서 70여회의 연설을 통해 박정희, 김종필 등 한-일 협상 주도 세력을 비판했다. 베트남 국군 파병과 관련해선 1966년 방한한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을 두고 “한국 청년의 피가 더 필요해서 온 것”이라며 신랄하게 공격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은 매진된 <사상계>를 반품하거나 한 해에 두번씩이나 세무사찰을 하는 방식으로 <사상계>를 압박했다.

장 선생은 1962년 한국인 최초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며 나라 밖에서도 업적을 인정받았다. 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수감된 상태에서 국회의원으로 옥중당선됐다. 72년 10월 유신 이후엔 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가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는 등 반유신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장 선생이 숨진 뒤 명동성당에서 치러진 영결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장준하의 죽음은 별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더 새로운 빛이 되어 앞길을 밝혀주기 위해 잠시 숨은 것뿐”이라고 말했다.


박기용 권혁철 기자xeno@hani.co.kr



'장준하 타살' 의혹 다시 제기
"두개골에 6㎝ 구멍… 인위적 상처 검안 소견도"
유족, 검시결과 17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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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짝 · 246718 · 12/08/15 23:28 · MS 2008

    참, 거대권력 혹은 거대한 부정의와 싸우다 소리없이 죽어간 작은 목숨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비단 우리나라 군사독재시절 뿐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전체를 통틀어서요..

  • 12중대장 · 389979 · 12/08/16 00:41

    이렇게 죽어간사람이 한두명이 아니죠..
    서빙고 가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다더라 하는 말이 괜히 나왔나...
    운동하다 감옥가고 나오자마자 곧바로 강제징집되고 군대갔는데 얻어맞아 죽은 사람은 또 얼마며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건 또 뭐냐는거죠.

    이걸 대통령이 직접 죽이지 않았으므로 살인자가 아니라고 쉴드치는건 뭐고
    그 시절 사람들(???)이 그때가 좋다는데 니들이 왜 딴소리 하냐고
    정말 웃기지도 않는 소리 지껄이는건 뭔지....
    "유감이네요... 자기가 당해봐야 알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 문짝 · 246718 · 12/08/16 00:55 · MS 2008

    정말 직접 총칼로 안 죽였다고 살인자가 아니라 쉴드치는 거 역겨워요

    그 시절을 그린 박재동 화백 만화들만 봐도 얼마나 처참했는지 ㅠㅅ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