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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statistics14 [961875] · MS 2020 · 쪽지

2020-04-12 17: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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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숲 연의생에 이은 후속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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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숲 #67471번째 외침:


어제 처음으로 아웃백을 가봤다는 사람의 글을 읽었다. 엄마가 죽었다는 말을 담담하게 6글자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글이 너무 아프게 다가와서인지 오늘따라 나도 힘들었다는 얘기를 할 용기가 생긴것 같다.


그저께로 꼭 9년이 지난 일이다. 그 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산을 오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아버지 상태가 안 좋아보이니 옆에 꼭 붙어있어라' 말씀하셨고, 정말 어디론가 가버릴까봐 난 아버지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결국 가슴이 아프다며 평평한 돌을 찾아 누우셨다. 높은 산중이라 전화는 잘 터지지도 않았고, 119를 부른지 3시간이 지나서야 헬기 승인이 났으며, 내가 붙잡고 있던 손은 아무 의미 없던 발악이었을 뿐이었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나 가거든 잊고 살아라' 한 마디만을 남기시고 그렇게 내 손을 놓으셨다.


그 때까지 내 삶의 절반은 어머니였고, 절반은 아버지였다. 밖에서는 선생님들과도 얘기를 많이 안 할 정도로 내성적인 아이였고, 책을 친구삼았던 아이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장례가 끝난 후 남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사랑해줄 사람이 한 명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구를 대하든 웃는 낯으로 대했다. 그래야 사랑해줄 것 같아서 계속 웃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연습했다.


남들 시선을 극도로 의식하기 시작했다. 내가 싫은 것보다 남이 싫어하는 모습을 보는게 더 힘들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조금만 무표정으로 있어도 눈치를 봤고, 친구들이랑 함께 있을 때도 그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했다. 패드립이라도 듣는 날이면, 예민하게 받아들이면 친구들이 눈치라도 챌까봐 겉으로 웃어주고 집에 돌아와 화장실에서 울었다. 


음악도 그만뒀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꿈을 포기했다. 그나마 아버지의 택시 일로 간간히 버티던 집안이 기울어가기 시작했고, 음악 전문 학원의 학원비는 생각보다 생활비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12살이 되며 어머니께는 "그냥 이제 질렸다. 재미 없으니 안 하겠다." 딱 두 문장만 말씀드렸고, 어머니도 그냥 받아들이셨다.


어머니는 나보다 43살이 많으시다. 50이 넘은 나이에서야 비정규직 일을 시작하셨고, 지금의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셨다. 어깨와 팔꿈치는 석회가 끼어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일을 쉴 수 없기에 진통제로 하루하루 버티며 잠을 청하셨다. 지금 2020년, 어머니는 64세가 되셨고, 아직도 수술하지 않으셨으며, 내일도 일을 나가신다. 어머니는 대학병원 구내식당에서 일하신다. 코로나가 터진 후에도 매일 일을 쉬지 않으셨고, 어머니에게 일을 그만두시라고 말한지 2년이 지났지만 어머니는 고집을 꺾지 않으신다. 내가 대학에서 쓰는 돈을 보태주시기 위해. 어디가서 '아버지 없이 자란 놈' 티 안나게 해주시기 위해.


나는 꿈꾸던 대학에 합격했지만, 크게 기쁘지 않다. 내가 용돈을 드려도 모자란 연세의 어머니께 용돈을 받아가며 학교를 다닐 생각을 하면 기쁠 수가 없다. 주변 친구들은 알바를 하라고 말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알바하는걸 원치 않으신다. 어머니 몰래 하루 일당 받아가며 가끔 일하지만, 그 돈으로는 길어야 2주정도 용돈을 대체할 수 있을 뿐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집에 돈이 모자라게 된 것도, 내 성격이 바뀌는 것도, 어머니가 아프신 것도. 하지만 정말 무엇보다 힘든건, 내가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머니께 용돈도 드리고 싶고, 음악도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 사소하게 이쁜 옷도 사입고 싶고, 어머니도 사드리고 싶다. 성인도 됬는데 아버지와 술 한 잔 마셔보고 싶고, 평생 택시 운전만 하시던 아버지를 내가 모시고 여행도 가보고싶다.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그런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이런 현실적 이야기가 더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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