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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달처럼 [849734] · MS 2018 (수정됨) · 쪽지

2020-03-13 18: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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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단편 소설- <문드러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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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아 문둥아 더러운 문둥아


동네 아이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천형을 당한 괴물 취급을 당하며 십수년을 읍내로 산으로 논으로 헤멨다. 아내도 동생도 부모도 나를 버렸다. 벙거지를 뒤집어 쓰고 보자기로 얼굴을 감싸고 미군 점퍼로 몸을 꽁꽁 감싸맸다. 양말도 두켤레씩이나 신고 다녔다. 이따금 개천으로 가서 얼굴을 씻고 옷가지를 씻을 때면 개천에 비친 내 뭉그러진 얼굴과 몸 아닌 몸을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면 일곱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감싸쥐고 홀로 흐느끼곤 했다. 멀쩡히 고교를 나와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가난하지만 행복할 것 같았던 내 생활이 하루아침 사이에, 손가락에 생긴 작은 부스럼부터 시작해 이렇게 망가질지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밭에 가서 무를 서리하다 몽둥이질을 당하고, 동냥을 하는 와중에도 그곳 거지 떼에게 쫓겨날 때가 다반사였다. 순간 순간이 영벌의 지옥에서 심판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구석진 논두렁길을 홀로 지나던 중, 구추한 행색의 이름모를 일행이 읍내의 천주교회당에서 무료배급행사를 연다는 이야기를 쑥덕대는 걸 들었다. 그곳에 가면 따뜻한 쇠고기죽을 준다고 했다. 나는 그 날까지 3일을 굶었고, 먹은 거라곤 도토리와 밤 서너알과 샘물을 떠마신 게 전부였다. 쇠고기라는 것도 일제 때 아버지랑 화신백화점에서 몇 점 먹어본 게 전부였지만, 당장 배가 고프니 가릴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바로 읍내로 가서 성당 배급소로 향했다. 그곳엔 코가 크고 수염을 기른 외국인 신부와 나이 많은 수녀 두 사람이 있었다. 한편 나는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회피의 대상인 동시에 이미 두려운 명물이 되어 있었다. 배급줄은 나의 등장으로 인해 혼란에 빠졌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거지 몇 사람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나를 피해 다른 줄에 서거나 몇 미터 밖으로 도망을 했다. 나는 늘 당했던 일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있으려 했지만, 기어코는 성당 청년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막대기를 휘저으며 나의 존재를 내쫓으려 했다. 이미 실어증에 걸려있었던 나는 어버버 거리다 떠날 채비를 했다. 그 순간 외국인 신부가 달려왔다. 안경을 쓰고 코가 빨간, 수염을 너무 많이 길러 얼굴을 알아볼 수 없던 그 신부는 어눌한 한국어로 내게 말하였다. 그의 큰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었다. 


“탕신을 위한 컵뉘다. 맘컷 두셰요우.”


늙은 수녀는 신부를 따라 큰 국자로 그릇에 죽을 가득 담아 내게 건넸다. 오랜만에 보는 놋수저와 백김치 반찬도 함께 건넸다.


“다 드시고 가세요.”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문둥이인 나를 휘둥그런 눈으로 쳐다보며 내가 죽을 퍼다 먹는 걸 얼마간 구경했다. 나는 그 때부터 아직도 하늘이 나를 돌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죽을 다 먹고 나서려 하자, 신부가 내게 찾아와 말을 건넸다. 


“잠쉬만 키달리시요우”


그는 주머니에서 그가 꺼낼 수 있는 모든 물건을 다 꺼냈다. 몇 장의 지전과 동전 서너푼, 성당에서 주일마다 나눠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 옥수수떡 한 덩이, 그리고 예수가 새겨진 작은 십자가였다. 그 순간 나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떠나기 직전에 말을 뗐다. 실어증에 걸린지 너무 오래였을까, 나 역시 신부처럼 어눌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그에게 던졌다.


“나….가…가툰 놈두 처언…주 믿어도 되우…?”


“그럼 당연하죠우, 쳔주뉨은 우리와 눌 함케 계쉽니돠.”


잠시 침묵하던 신부는 다시 운을 뗐다.


“형줴뉨, 이 키도를 늘 기엌하십시오… ‘쳔쥬님 캄사합뉘다, 사량합뉘두와’. 구리고 피료한컷은 늘 쳔쥬님꿰. 아쉬겠죠우?”


신부는 내 더러운 손을 꼭 잡고 내 눈을 깊이 쳐다보더니, 손으로 알 수 없는 표식을 남기고 다시 배급소 자리로 돌아섰다.


그 때부터 나는 천주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로 하였다. 처지 상 성당에 직접 나가지는 못하였지만, 주일 밤마다 신선한 옥수수떡을 받으러 성당에 찾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문둥이라고 회피하며 나를 비웃고 괴롭혀도, 천주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생각하고 살려고 노력하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그러고 추운 겨울이 되어, 폭설로 인해 성당 문도 오랜만에 굳게 닫힌 시기가 있었다. 두 주 이상 이런 일이 지속되면서 나는 먹을 것을 5일씩이나 굶게 되었다. 온 몸이 꽝꽝 얼어붙은 상황에서 다시금 운명과 나 자신을 탓하며 바싹 마른 눈물을 다시 흘릴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신부가 기도하라고 했던 것을 기억했다.


“천주님, 저 좀 살려주십쇼. 제가 죽을 것 같습니다.”


그 때 나는 읍내에서 부잣집으로 소문난 지주의 집 근처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대문간에 있던 개의 밥그릇에 뜨뜻한 라면을 붓는 것이 아닌가. 개는 담요를 덮고 자고 있었다. 남들 보기에는 너무도 비참한 광경이었지만. 나에게는 슬픔이 아닌 살 수 있다는 기쁨이고 안도였다. 아직 나를 먹여 살리시는구나! 그 자리에서 나는 무릎을 꿇고


“천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빈 다음 개 밥그릇을 뺏어 허겁지겁 라면 그릇을 비웠다. 개를 위해 주었던 담요를 몰래 가지고 와서 더러워진 입과 눈에 얼어붙은 머리께를 훔쳤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엎드려 울었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던 탓이었다.








*이 이야기는 저희 아버지가 목격하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라면 그릇 이야기는 실제 아버지가 목격하신 일을 그대로 쓴 것이고, 외국인 신부는 산청성심원의 유의배 신부님을 모델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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