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글- 산타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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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크리스마스. 아기예수의 탄생을 환영하는 기쁜 축일임에도, 수백년 동안 하늘과 땅 사이를 이어 울리던 성당의 종은 더이상 울리지 않은 날이 오래되었다. 내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내 동생이 세상빛을 볼 때쯤, 성당의 종은 뚝 그치었다. 외로된 이들, 쓸쓸하고 상처입은 이들, 당장에 몸녹일 곳조차 없는 이들에게 다시 살아가겠다는 희망의 불씨가 되어준 성당의 종소리는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그 어린 시절에 나는 성당에 다녀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아주 잊혀진 기억 속에 할머니댁이 있는 경기도 수원의 한 큰 성당에서 종소리가 댕댕 울리는 것을 들었던 것이 남아 있다. 그 날은 늦은 여름이었고 하늘엔 노오랗고 뿌연 무지개가 떴었다. 하느님이 노아에게 다시는 너희에게 분노하지 않으마 라고 약속하며 희망의 징표로 남겨준 무지개. 그리고 그것이 내가 대도시와 아파트 속에서 볼 수 있었던 기억 속 마지막 무지개였다. 내 기억 속에 성당의 종소리와 무지개는 영원히 한 폭의 그림 속에 같이 남아 있다. 만일 댕댕 울리는 그 종소리와 무지개의 누우런 빛깔을 그리라면 그 풍경을 도화지에 또다시 그릴 수도 있겠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는 그 화폭 속의 나는 십수년이 흘러 절망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름의 성당과 뿌연 구름 밑에 서게 되었다. 재수생 신분이던 재작년의 어느 가을, 나는 종도 울리지 않고 낙엽 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한 성당 뒤켠의 성모상 근처 화단을 홀로 거닐다 구겨진 천원짜리 지전을 펴 함에 넣고 초를 꺼냈다. 신이 있다면 나의 기도를 들어주리라. 저 분은 그 신의 어머니라는데 한번 손맞잡고 기도해보면 뭔가 이루어주지 않을까. 성모님은 차갑고 무거운 베일을 쓰고 조용한 미소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 앞에는 서리에 젖은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그 자리에 놓인지 오래되어 다 죽어가는 꽃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어느 누군가가 저 꽃을 바친 것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마치 이 앞에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오게 된 것이 아닐까. 하면서. 처음엔 두 손을 모아 합장하던 나는 조금 더 절실하게 깍지를 끼고 기도손을 하였다. 기도를 들어주소서. 옛날에는 늘 기도를 들어주세요 라는 비격식체였는데 지금은 기도를 들어주소서. 라고 속으로까지 생각을 하였다. 처음에 얼마나 망설였을까. 신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기도라는게. 기도손을 하고 무릎이 꿇어질락 말락 하는 어벙한 모습으로 입과 마음의 문이 떼어지지도 않은 채 눈을 감았다. 한참을 그런 적막 속에 있었던 것 같았다. 앞에 보이는 것은 완전한 어둠과 추위에 떨고 있는 나 자신 뿐이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한 5분 정도가 지난 순간, 내 어린시절 성당의 종소리를 듣고 감동을 한 그 시절부터 시작해 기억할만한 추억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없이 비천해 보였던 나 자신의 몸과 마음 속에 의외로 많은 추억이 사진처럼 남아 있었구나. 지금 이순간 또한 턱없이 많은 그 추억들처럼 또한 지나가겠지만 이 또한 스스로에게 기억되리라. 내 마음은 다시 소중한 이들을 향하기 시작하였다.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친척들, 또 많은 지인들과 인연들... 갈라진 심장의 틈바구니로 어린시절의 종소리와 무지개가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이 때 눈물이 찔끔 나온 것은 그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나 자신을 미워하고자 해서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내가 소중했고,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사람이구나 라는 사실을 적막 속에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하늘의 위로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싶었다. 눈을 다시금 뜨고 성모상을 바라보니, 믿기지 않게 조용한 그 미소 속에서, 성모라는 이름의 석상 너머에서 울리는 신적 모성을 느낀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조용히 나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이고 하례하고 나오면서 속으로 기회만 된다면, 정말 기회만 된다면 나를 위로해주신 당신을 모시면서, 또한 당신을 모시듯 다른 이들을 섬기면서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치기 어린 욕심을 냈다. 그러고 성당을 빠져나와 천을 건너, 다시 저녁 휴식을 마친 학원 책상머리 앞에 앉아 국어 모의고사를 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도, 마음 속엔 들뜬 사랑의 기운이 가득했다.
이것도 재작년, 내가 재수하던 때 내 상처가 아직 아물기도 전의 일이다. 그 뒤로 마음이 터지고 찢어지는 일들 속에서도 나는 그 때 일을 생각하면서, 힘을 내곤 한다. 지금은 상처들이 아문 만큼, 딱지가 지고 가라앉아서 그 시절의 순수함을 되찾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또한 이 시절에 품었던 '치기어린 욕심'이라는 것도, 이젠 추억과 또다른 아픈 기억들 속에 묻혀 마음 속에서 스러지는 중이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돈 벌 궁리를 하고, 사회 진출을 향한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어린시절의 무지개나 종소리나 성모상 앞에서의 홀로 겪은 추억 조차도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 속상하다. 하지만 오롯이 내 맘에 기억하고 남겨진 진실은, 신의 어머니 되시는 분이 나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많이 아낀다는 자기애적인 믿음 뿐인 것 같다. 남들 듣기엔 판타지 소설 같은 이야기일지 몰라도, 내가 겪고 느낀 것이니 어쩔 수 없지 뭐.
산타 마리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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