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에필로그 - 이데올로기의 실패, 그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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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방 후 서울에서 실시된 여론조사를 보면
지금과는 다른 놀라운 양상이 보인다.
우파 민족주의 계열 정치인인 이승만, 김구나
사민주의 계열 정치인으로 활동한 여운형 뿐만이 아닌
김일성, 허헌, 박헌영 등 분단 후 38선 이북에서
북한 정권 수립을 주도한 인물들이 버젓이 지지도 상위 랭크에 올라와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선호도가
미군정 치하인데도 높았다는 현상
이 현상에 숨겨진 배경과 이후 양상을 간략하게 보자.
다들 KAPF(카프) 문학에 대해서는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이다.
단순히 사회주의 성향 문학가들이 모여서
조선의 문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물론 이렇게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임정 내부에서의 이념노선 갈등과
독립군 상당수에 사회주의/공산주의 세력이 분포했다는 점
위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일제강점기 치하 조선에서부터 해방 직후까지
사회주의/공산주의 세력이 지식인 사이에서 적지 않은 비율로 존재했단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해방 전 지식인들은 굳이 사회주의/공산주의를 택해야만 했는가?
2.
국공내전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다면 장제스가 누구인지도 잘 알 것이다.
중국 국민당의 지도자로 전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중요 동맹국 지도자였으며
중국 공산당과 내전을 벌여 결국 대만으로 국부천도를 해야했던 사람.
하지만 한때 장제스가 '소련의 지원'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서구열강에서 '장제스의 사상'을 의심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중국은 북양군벌 등 군벌세력의 손아귀에 갈기갈기 찢어져
국민정부의 통제권이 거의 발휘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이때 쑨원 등 국민당 지도부는 북벌을 통해
군벌로부터 중국 국토를 탈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이때 소련(코민테른)과 그들의 지도를 받는 중국 공산당은
중국 국민당에 협력을 제의하였고
그 결과 국민당은 공산당과 단절하기 전까지
군사적 지원 및 재정적 지원을 받아 군벌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나갔다.
이때 장제스는 협력의 일환으로 소련 방문을 하였는데
그렇다면 왜 소련은 먼 나라에 이런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했는가?
당시 스탈린은 일국사회주의론을 통하여 "소련이 존속해야만 세계혁명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을 밀고 있었다.
이때 '세계혁명'은 당연히 세계 곳곳에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때의 선제조건이 '제국주의. 봉건주의 타도'였는데
이는 제국주의 열강 아래서 고통받는 독립운동 세력이나
군벌에 맞서던 민주주의 세력에 소련이 전폭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 이어졌다.
결국 지식인들은 '제국주의 투쟁 전선'에 동참하던 소련의 이념에 이끌려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사회주의/공산주의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해방 후 '조선의 모스크바' 별명이 생길만큼 사회주의 열풍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여기까지 보면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전세계 지식인에게
인기를 끌만했던 요소가 있어보인다.
이는 특히 해방 후 지식인에게 크게 영향을 미쳐
분단 이후에도 지식인 계층 상당수가
대한민국 정부에 비협조적으로 나오거나
월북하는 등의 현상을 만들어냈다.
심지어 제헌의원 중에서도 일부 월북자가 나왔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3.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은
서울대병원에 있는 의사와 환자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다.
한편 군경이나 공무원, 지주의 가족 뿐만이 아니라
북한 정권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사람을
인민재판이라는 형식을 통해 처형하는 등
38선 이남 점령지역에 대한 행정권을 폭력을 통해 행사하였다.
이는 민중 뿐만이 아니라 지식인 계층에게도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반감을 심어주어
점령지역에 대한 민심 이탈을 유도하였고
결국 북한 정권은 한국전쟁의 결과
남한 지역에서의 '공산혁명' 가능성을 오히려 봉쇄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한편 월북한 지식인들은
점차 독재권한을 강화하려는 김일성에 대항하여
전당대회에서 김일성을 탄핵하려는 전선을 세웠으나
'8월종파사건'에서 김일성파가 반김일성파를 누르는 데 성공하면서
결국 연안파, 소련파와 함께 김일성에게 반대하는 지식인들은
숙청되거나 목숨을 잃었다.
결국 1인독재체제 속에서 생기를 잃은 북한 정권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마저 패배하고 말았다.
이데올로기의 변질 속에서 말이다.
그런데 이데올로기의 변질은 김일성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을까?
4.
때는 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
미국은 국내외 전반적으로 큰 도전에 직면한 상태였다.
"공산월맹으로부터 자유월남을 지킨다."는 아젠다와 함께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미국이었지만
부패한 월남정권을 돕는다는 도덕적 비난이 함께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베트콩의 구정 공세는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 내 여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냉전 당시 소련에 대항한 미국의 가장 큰 무기는
자본주의도 아니고 달러도 아니었다.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이념 무기였다.
스탈린주의 독재국가로부터 동맹국 시민들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제1세계의 경찰을 자부하던 미국의 도덕성
하지만 위 사진에서와 같이
부패경찰이 시민에게 총을 겨누고서 즉결처형을 하는 모습이나
미군의 네이팜탄을 맞아 고통스러워 하는 베트남 아이의 모습은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미국의 이데올로기에 크나큰 손상을 가했다.
무너진 명분 속에서 베트남전에 대한 반발은 서구세계 전반적으로 번졌고
히피 문화의 유행과 68혁명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아닌 '압제자'가 되어버린 미국의 모습에
제1세계 시민만이 아닌 미국 시민마저
호치민이나 마오쪄둥 등 공산권 지도자를 찾기 시작하였고
정부를 넘어 기존 체제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사회분위기 속
제1세계는 냉전 시작 이후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최대 위기에 봉착하였다.
하지만 십몇년 후
깃발에서 내려간 것은 백악관의 성조기가 아닌
크램린궁의 소비에트기였다.
5.
냉전종식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미국 대통령이라면
로널드 레이건을 많이 꼽을 것이다.
군비경쟁과 대소 강경정책을 통해 소련의 붕괴를 유도한 대통령으로 말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베트남전을 거쳐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제1세계의 골격은 많은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분명 레이건 정부는 미국만이 가진 이데올로기 무기를 맘껏 사용할 수 있었다.
인권과 민주주의. 이전 대통령에서 바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인권외교의 대명사. 지미 카터.
미국의 힘을 약하게 만든 대통령으로 인식할 수 있겠으나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노자의 말에서처럼
그의 유약해보이는 면모는
제1세계의 도덕적 우월성을 다시 회복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그 도덕적 우월성은 다시 제2세계를 향한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남아메리카나 제3세계 국가
그리고 때로는 동맹국 중 독재정권을 향한 날카로운 인권외교
이런 일련의 행위는 미국이 실리에만 연연하기보다는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건국의 아버지가 부여한 천부적인 가치를 수호하는 데
방패와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메세지를 던졌다.
하지만 미국이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시민의 힘이 가장 컸을지도 모른다.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불법을 저지른 대통령을 성공적으로 '사퇴'시켜
(닉슨은 탄핵 직전에 사퇴했다.)
안보라는 명목으로 훼손되던 헌법의 가치를 다시 되살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다시 미국의 이데올로기 무기로 자리잡은 가운데
지미카터 정부의 국가안보 보좌관이 갑작스레 무언가를 외쳤다.
"이제 소련 놈들도 베트남 전쟁의 맛을 볼 차례다."
6.
지미카터의 국가안보 보좌관인 '브레진스키'가 1998년 한 프랑스 주간지와 인터뷰한 내용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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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벨 옵세르바튀르」: 지금 당신은 이 점과 관련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가?
브레진스키 : 무슨 후회를 할 게 있는가? 그때의 기밀 작전은 기발한 구상이었다. 그 작전은 러시아를 아프가니스탄의 함정에 끌어들이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후회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소련이 아프간 국경을 넘었던 그 날, 나는 카터 대통령에게 이렇게 썼다. '우리는 지금 소련을 베트남 전쟁으로 몰아세우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라고.
「누벨 옵세르바튀르」: 그러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지원함으로써 미래의 테러 집단들에게 무기와 군사 참모를 제공한 사실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브레진스키: 세계사의 전개에 있어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지 않는가? 탈레반인가, 아니면 소련 제국의 붕괴인가? 이슬람교도의 일부를 약간 동요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중부 유럽의 해방과 냉전의 종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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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말했듯이 미국의 이데올로기 무기는 인권과 민주주의였다면
소련의 이데올로기 무기는 '반제국주의'와 '평등한 인민'이었다.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억압받는 인민을 해방시키는 군대라는
자부심을 가진 '소비에트 군대'이었지만
이 자부심을 결정적으로 무너트린 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이었다.

'외국세력의 군대'가 국토에 들어온 것을 본 아프간 사람들은 반발하였고
특히 농촌지역의 이슬람 우세지역 주민들은 '무자헤딘'이라는 민병대를 조직하여
'제국주의 침략자' 소련군과 맞서게 되었다.
결국 '아프간의 베트콩'과 맞서게 된 소련군은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화력을 동원하였지만

전선이 교착에 빠진 상태로 겨우 주요도로만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부터 소련군의 장교와 사병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분명 자신들은 제국주의로부터 인민을 해방시키는 군대인데
아프가니스탄에서 '아프간 인민의 군대'를 힘으로 찍어누르는 '제국주의 군대의 행태'를 하고 있으니 말이었다.
소련의 제국주의적 면모와 억압적 면모를 마주하게 된 소련군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마주했던 난제와 비슷한 것이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이 직면했던 것처럼
소련군들도 전쟁에 대한 공포와 허무감 속에서
술과 마약, 매춘으로 빠지기 시작하였다.
히피들이 그랬던 것처럼
염세주의와 허무주의가 소련 젊은이들 사이에 퍼졌으며
무엇보다도 소련 체제가 표방했던 이념에 대한
전면적인 회의가 공화국 시민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반제국주의"와 "인민 해방"이 진정으로 제2세계의 이념이었는지
제국주의와 인민억압이 현실인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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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조국전쟁의 참전자들과 자주 비교되었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고향을 지키는 동안 우린 무얼 했을까요? 어느 한 청년이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는 독일군의 역할을 맡았던 겁니다. (어느 군인의 회상 중)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아연 소년들(Цинковые мальчик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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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안녕'
물론 미국처럼 체제를 추스릴 겨를을 확보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1985년 체르노빌 사고와
경제부담 가중으로 인한 개혁개방 정책(페레스트로이카)
그 과정에서의 혼란은 사회의 불안정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차우셰스크 정권의 붕괴'
'반제국주의'와 '인민'이라는 신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제2세계는
프라하의 탱크를 기억하고 있었다.
결국 동유럽 혁명과 함께 제2세계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체제를 수호하려는 동유럽 독재자들의 모습은
소련 공산당 체제가 존속해야 할 이유마저 무너트리고 있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던 소련 공산당의 보수파는
과거 이데올로기적 영광을 되찾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 또한 변질된 영광인 것.
변질된 이데올로기를 마주한 소련 시민의 답은 하나였다.
결국 쿠데타는 시민에 의해 진압되고 소련 최고회의는 공산당 활동을 전국에서 금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제2세계가 패배하는 순간이었다.
7.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혁명을 이끌어내어
구체제를 타도하는 촉매제가 된다.
하지만 동물농장에서처럼
이데올로기가 변질되는 양상 또한 존재한다.
물론 그것이 자체적으로 모순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사회시대적 상황으로 인한 붕괴인지는
각 이념마다 처한 상황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변질된 이데올로기가 도전에 직면했을 때
원래의 방향성을 회복할 기회마저 놓친다면
체제경쟁에서 패배로 끝나는 것만은 분명하다.
'독재자 나폴레옹'이 영원히 승리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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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글이 묻히다니 ㅠㅠ 유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