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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꿀잠 [367735] · MS 2011 · 쪽지

2011-11-11 00: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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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는 그 내용 자체로서도 근대 문명이 무시해오던 제 3세계의 문화와 과거로부터, 인간성, 공동체 문화와 같은 근대 문명의 결핍된 부분을 확실하게 잘 짚어 주었다. 즉 이는 지나치게 서구 중심으로 중심화되고, 산업 의존적인 근대 문명에게 좋은 비판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치게 갈망하는 성장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우리의 행복은 어떻게 하면 추구할 수 있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본주의가 행복을 가져다 주는 가장 좋은 체제인가 와 같은 현재 사회에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게다가 단순히 문제 제기에서 그친 것만이 아니라 라다크의 중심으로 제한되어 있긴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저자가 행했던 라다크 프로젝트와 같은 실천과 그에 관련된 사실이 있다는 점에 있어서도 매우 유익하다. 하지만 반개발과 라다크의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에 관한 문제는 그 자체로서도, 다른 사회에 적용시키기에 앞서서도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러한 문제점을 비판하기에 앞서, 저자인 노르베리-호지가 말하는 반개발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반개발(anti-develop)’이란 단어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개발은 반대한다라는 의미는 맞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개발은 21C에 우리가 사용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 아니고 근대적인 개발을 의미한다. , ‘반개발의 사전적인 의미는 근대적인 개발을 지양하는 개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반개발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이를 정치학자 더글러스 러미스(C. Douglas Lummis)의 주장을 이용하면 원래 성장(growth)이라는 말과 유사한 의미를 가진 개발(Development)이 식민주의, 자본주의와 같은 근대적인 이데올로기를 품고, 외부에서 어떤 틀을 가지고 이러한 그림을 그려내는 것으로 근대적인 성장이라는 것을 잘 나타낼 수 있다. , 반개발이란 단어 자체는 변화를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고, 근대적인 방법에서 벗어난 변화를 뜻한다.

반개발은 근대가 인간을 발전의 중심에서 밀어낸 것에 반대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성향을 어느 정도 띄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반개발 그 자체는 개념의 도입부터 패러다임의 변화를 막고 있다. 그 이유는 호지의 반개발이라는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라다크 사람들의 행복이다. 그들이 서구가 들어오고 나서 불행한 현대인처럼 사는 라다크 사람들이, 서구의 유입 이전처럼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던 것이 이러한 사상의 발전에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너무 과해서, 반개발이 라다크의 과거의 관습을 보존한다는 것으로, 라다크의 전통이라는 집에서 허물어져가는 기둥 몇 개가 있음에도 그저 리모델링만을 한다는 식으로 그 의미를 퇴색시키는 한계를 가진다.

그리고 호지는 교육에 대해서, 자급자족 중심의 생태적인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를 위한 실무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여기서 자수, 라다크의 농업 환경 등을 토대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육은 단순히 기술만을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물론 라다크가 다시금 자급자족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이를 목표로 하는 교육이다. 이를 위해 아이들은 자수를 통해 모직물을 만드는 방법과 라다크의 자연환경에 알맞게 농사를 짓는 법을 익히고, 이들의 전통적인 집을 만드는 법을 정규적인 학습을 통해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서구의 유입 이후 사라진 라다크 사람들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자 하는 것 하나 없는 행복이 과연 궁극적인 행복이었는지에 대해서 강한 의구심이 든다. 과연 그들의 과거의 행복이 단순히 라다크라는 환경에 갇혀서 나온 무지에서 나온 것이 아닌, 그들 내부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행복이었을지도 의문이다. 왜냐하면 불교적인 사고방식 외에 다른 사고방식이 존재할 수 없어서 그들은 있는 현실 그대로를 하나의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을 것이고, 그저 현실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라다크 사람들은 폐쇄적 공간이 아닌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서 그들의 역사가 전개되었다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과는 외부와의 교류가 차지하는 교집합의 크기가 차원이 다르고, 그 시대에는 현재에 비해 대부분의 사회들이 정적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외부 문화에 대해서 잘 적응해왔다고 해도, 서구의 쓰나미 같은 유입은 불가피하고 이로 인한 변화는 불가피하다.

게다가 라다크 사람들이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대해 호지가 제시한 교육은 라다크의 미래를 책임져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 폐쇄적이고 서양 기술을 일부분만 받아들이는 데 이는 앞으로 라다크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호지와 같은 사고의 서양인이 필요하고, 자본이 필요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사실 호지도 그들에게 이러한 문제들을 대비하기 위해 서구 문명의 교육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문명을 만들기 보다는 그저 이를 도구적으로만 이용하고 라다크 문명의 큰 틀은 계속 유지하려 한다. 물론 각 지역의 고유문화가 그들의 문화를 가다듬는 데 있어서 바탕이 되어야함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라다크의 과거에만 귀를 기울이고, 서구에 대한 이해를 하려는 데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반개발을 폐쇄적 민족문화주의로 그 범위와 가치를 퇴색시킬 것이다. 따라서 라다크의 교육은 그들의 세계 밖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명들의 이야기에 그들의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한다. 이를 위해서 호지가 제시한 라다크 프로젝트가 있지만, 사회, 기술 전반에 대한 좀 더 이론적이고 실재적인 방향으로 교육을 진행시켜야 라다크인에 의한, 라다크를 위한 라다크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반개발, 고유의 사회를 보존하면서 미래를 바라보기 위한 교육에 대한 이야기들은 현대의 많은 사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이 될 것이다. 좀 더 서구 문명의 가치를 이해하고 이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고 새로운 세상의 벽과 마주한 그들에게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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