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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이오르비내리니 [352376] · MS 2010 · 쪽지

2011-09-19 09:35:04
조회수 3,871

전두환 업적

게시글 주소: https://dev.orbi.kr/0001754938

http://blog.daum.net/hellcat6/71

*1938~1983. 80년대 한국의 경제 성공을 이끈 전두환의 경제 참모.

 

*경기고 2학년때 검정고시를 보고 1년 일찍 서울대 외교학과 입학. 졸업후 한국은행에 재직 중

하와이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1974년 경제기획원의 요직을 두루 차지.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은 김재익을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

 

*당시 대학생이었던 아들이 전두환 정권에 협력한다고 극렬 항의. 이에 김재익은 "경제의 개방화와

국제화는 결국 독재체제를 어렵게 하고 시장경제가 자리잡으면 정치의 민주화는 자연히 따라온다"고 타이름.

 

*전두환은 김재익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라는 말과 함께 모든 경제 정책에 전권을 위임.

http://news.donga.com/3/all/20101202/33008327/1

 

*대기업을 위한 차별 금융제도, 세제혜택 철폐를 주장. 대기업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공정거래제도

채택까지 주장. 그리고 중소기업 진흥 재단을 집중 지원했으며, 벤처 기업 육성을 강조함.

 

*1980년에 이미 20년 뒤에나 가능할 지하철과 버스를 연계하는 대중 교통 시스템과, 전자 통신 기술로

발생할 정보 산업 혁명을 주장함.

 

*전화기의 자급제 실시를 주도. 기계식 전화기에서 전자식 전화기로의 전환, 세계 최고 수준의 전화 네트워크를

전국에 구축함. 이후 김재익의 주도 하에 컬러 TV 송수신도 자유화됨.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1&aid=0002204911

 

*이중 곡가제와 같은 농촌 보조 정책 강력 비판. 이를 철폐해 농촌의 자생력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1252&yy=2010

 

*기업과 정부의 극렬 반대에 맞서 부가가치세를 채택-유지함. 부가가치세는 오늘날 정부 예산의 가장 큰 부분

을 차지하는 세목 중 하나.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5300104

 

*금융 실명제를 추진. 그러나 당시 대기업과 정치인 등 '비자금'을 다뤄야 하는 이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샀고,

결국 전두환에 의해 최종 좌절.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211367

 

*80년대 초반 자동차 산업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국은 내수 시장이 작아 자동차 산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조언했음에도, 그는 역으로 자동차 산업에 집중 투자할 것을 주장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7&oid=078&aid=0000014573

 

*1983년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소 테러사건으로 사망.



< 난세관(亂世觀)이라는 것이 있다. 그의 난세관은 5공 참여로 현실주의자란 평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어떤 정치권력이 그를 징발했어도 그는 부자연스런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경제관료이지만 학맥 지맥 인맥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는 관료사회에서 보기 드문 자원이었다. 소설 ≪유방과 항우≫(司馬遼太郞 著)에 유방(劉邦)의 총신 소하(蕭何)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소하는 유방을 별로 대단한 인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눈에 잘 띄지 않던 지방의 말단 행정관료였다. 그런 소하가 유방 밑에 들어가 유방으로 하여금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케 한다. 소하는 유방이라는 권력의 상징물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킨 것이다. 이 대목에서 ꡒ김일성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 밑에 가서 일할 수도 있다ꡓ는 김재익의 말이 떠오른다. 잘못된 권력에는 맞서 싸우는 방법과 그 속에 들어가 변화를 이끌어 내는 방법이 있다. 아마 그가 선택했던 길은 후자인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옳았다는 사실이 20년 후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나간 사람을 떠올리면 기억 저편으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이미지도 말씨도 더욱 선명해 지는 인물이 있다. 그것은 물론 사적(私的) 교류에서 남아있던 인상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김재익과 친구가 아니다. 사적으로 가까웠던 사이도 아니다. 기자와 관료였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그의 이미지는 선명하고 설득조의 그 나직한 말씨는 생생하게 들려온다. 아마 그의 비극적 죽음이 사실 이상으로 그를 채색시키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도저히 한국 관료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유일한 청결 맨이었다. 경제와 미래에 대해 그만큼 진지하게 이야기한 경제관료는 없었다. 그리고 그의 꿈은 원대했다. 내가 머리 속에 그렸던 참모급 관료의 가장 이상형(理想型)이었다.>
- 동년배 기자가 평가한 김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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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인 경제 분야라고 해봤자 군부두뇌가 딸리니 제갈량 고용해서 오토 설정해놓은거


암튼 존경하시는 경제인 故김재익 경제수석...

현실을 파악하는 통찰력도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도  모두 뛰어나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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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eppie · 243365 · 11/09/19 10:15

    ㅜㅜ

  • 사회대12 · 371680 · 11/09/19 11:58

    사실, 금융실명제도 장영자 사기사건 때문에 이미지가 악화되서 나온 얘기였죠. 장영자가 이순자의 숙모였는데, 어음사건으로 인해 전두환 인척비리가 터져버렸죠. 지금까지도 어음사기 최대기록인듯. 그러자 전두환이 김재익씨에게 어떻게 해야 되겠냐고 물었고, 김재익씨가 금융실명제를 해야된다고 했는데, 허화평 노태우 등 주변 인물들이 금융실명제 다 좋은데 이러면 정치자금 어떻게 할거냐 라고 물었고, 그것때문에 전두환이 포기하고 김영삼 정부에 들어가서 실현됐죠. 장영자는 요즘도 턴 돌아가면서 감옥 왔다갔다 하는듯.

  • larala · 343763 · 11/09/19 13:07 · MS 2010

    저분 부카니스탄이 돌아가시게 한거죠?..

  • 지구과학 · 383980 · 11/09/19 13:19 · MS 2017

    ㅇㅇ 아빠돼지가 죽임

  • neptune2 · 268857 · 11/09/19 13:19 · MS 2008

    북한인지 남한인지 확실히 기억은 안나지만 전두환 죽이려고 한 테러에서 정작 전두환은 안죽고 고위 관료들만 죽었어요. 저분이 그 때 죽은 분 중 하나.

  • 사회대12 · 371680 · 11/09/19 13:33

    북한이 아웅산 묘소 참배 계획을 알고, 전날 폭탄을 설치했죠. 터트렸는데, 전두환은 아직 도착도 안한 상태였고 장관등 관계자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미얀마는 북한과 단교.

  • 살랑살랑 · 277148 · 11/09/19 17:33 · MS 2009

    아 부칸 ㅅㅂ

  • apocalypse · 348559 · 11/09/19 13:27

    이규보같은 분인듯 이규보도 무신정권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동참한 거로 아는데...

  • 무명소졸 · 383625 · 11/09/19 14:10 · MS 2011

    김재익씨 생각하며 클릭했는데 과연...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