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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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주택가가 거의 없는
종로구 어는 한옥촌이 제가
태어나고 초중고등대학을 다닌 동네입니다.
제 기억엔 초등학교 6년내내
일주일에 한명꼴로 지방에서 전학오는 친구들이 있었고
아마 5-6학년부터 영동지역(지금 강남이라고 말하는 지역)으로
전학가는 친구들이 제법 많이 생겼습니다.
제가 졸업한 초등학교는
지금 인원이 늘어났다고 하는데도
한학년에 10명정도라고 합니다.(5명 입학한 적도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졸업할때는 한학년 한반에 60명이 넘는 인원에 7-8반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교생에 그때 한반정도 뿐이 되지 않겠군요.
제가 어릴 때 고속버스 기차는 물론
시내버스에서도 담배를 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말도 안 되지만
지하철 플랫폼은 물론
지하철 안에서도 담배를 피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겨울에 친척집에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환기도 안 되는데 담배 핀다고 싸우던 어른들이 생각나네요
지금은 담배 피는 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것이지만 그 당시 문화가 그랬던 것을 기억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무 곳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되었죠.
학생운동을 소극화 하려는 목적으로
졸업정원제가 시행되었는데 많은 부작용을 안고
다시 입학정원제로 88학번부터 완진히 변경됩니다.
입학정원제는 지금과 같은 방식이고
졸업정원제는 졸업시키는 인원보다 더 뽑아서
대학에서도 대학생들 딴짓못하게 경쟁을 유도 한다는 방식이었죠.
다시 졸업정원제로 된것이 문제인점이
수험생은 계속 느는데 아마 91-92년까지 수험인구는 절정을 이룹니다.
같은 나이가 백만 명이 넘는 시대였으니
지금 50만명 조금 육박하고
앞으로는 40, 30만명대로 떨어질 친구들은 잘 느낌이 없을 겁니다.
갑자기 입학정원제로 변경 후로 대학정원은 눈에 띄게 줄고
수험생은 많고 제 기억에는 88-92년 정도가 대학가기가 경쟁률로 치면 어마어마 했습니다.
1곳뿐이 지원을 못하는데 평균 4대1에 육박했으니
그냥 3,4 명중 한명은 대학생이 될 수 없는 현실,
후기대도 떨어지면 대학을 가고 싶으면 무조건 재수를 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고등학교 한 교실에는 60명이 수업을 받았고
종합반 한반에는 100명이 훨씬 넘는 인원으로 체워졌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유명 단과 학원은 500명을 가까이 받는 강사도 있었지요.
이게 왜 대단하냐면
재학생은 과외 전면 금지라서
재학생의 경우 예체능을 제외한 과외 학원을 아예 못 다니게 했고
만약 다니다가 발각되면
유기정학 같은 불이익을 주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때 만들어진 것이
80년대 후반 과외금지 해제 이후 90년대 초반 재학생 학원금지해제에 이르게 됩니다.
아마 사람마다 같은 기억을 할 수 있는 경우는 드믑니다.
정확한 기록이 있으면 자신의 잘못된 기억을 탓 할수 있지만
그것이 없으면 자기 자신을 믿기 때문에
그것이 정확하다고 (남들이 보기엔)우기는거지요.
전 원래 자연계였고
공대를 딱 2달 다녔습니다.
그당시 반수 같은 것이 없었는데 제가 거의 선봉인 셈이네요
기억을 되살려 보기전에 하고 싶은 말부터 하면
제가 정말 몇십년 사회에서 만나서
친한 거래처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의 나온 대학을 모릅니다.
같은 회사도 아니고
본인이 술자리건 말해주지 않으면 물어볼일도 없고
같은회사 친한 부서 사람이면 몰라도
일단 오르비에서 생각하는 것 만큼 학벌이 중요하다고 느껴 본적 없습니다.
물론 내가 별로 학벌이 안중요한 일만 해도 그럴지도 모르겠지만요.
기억을 되살려 봅니다.
고1때 종로서적에서 플래너 같은 것은 산적이 있는데
공부에 관한 토막상식 뭐 그런것들이 적혀있는 플래너 였습니다.
거기에 무슨 입시전문가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서연고를 가려면 몇점,
성외한시이 중위권대학을 가려면 몇점. 뭐 이런식이죠.
그냥 그 당시 내 기억으로는 모든 대학들이
지금 문과처럼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1/3정도는 겹쳐 있었고
상위권대학부터 이야기하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순으로 선호도가 높앗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동일과면 연세대가 한과만 빼고 다 높았는데
고대가 높았던 그 한과
누구나 알다시피 법대가 너무 앞도적인 인상을 줘서
고대가 연대보다 아래다 라고 말 할 수 없는
고법의 위력이 대단하긴 했죠.
순전히 개인의 기억에 의존하는거고
동일 시대를 살아도 다르게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겁니다.
저도 친구와 다른 기억을 가지고있는 것이 많기도 합니다.
뒤편에 계속 이야기를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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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기 돌려봤는데 정확하겠죠? 추합 작년에 4번 재작년 5번까지 돌았는데 추합 됐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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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per 이거 맞나요? 4 0
예상 예비번호가 80등이란건가요?? 다른분들은 다르게 나오는 것 같은데 왜 저렇게 나올까여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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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공계산기 0 0
점공계산기 최초합권 예상실제등수 믿어도 될까요? 전공개방모집이라 1순위 안될까봐 걱정되는디..

ㅎㅎ 그당시엔 지금처럼 의대가 천상계가 아니였지요. 연,고대 공대가 아주의대, 인하의대 동급레벨 정도였던걸로 ㅋㅋ그리고 대우그룹이랑 한진그룹도 짱짱해서 아주공대랑 인하공대가 성대공대 동레벨 이였죠. 경북대랑 부산대, 전남대는 지방 핵심 거점대학으로 중경외시급 ㅋㅋ 그리고 90년대말 2000년대 초는 한의학 전성시대. 경희한이 연의레벨정도. ㅎㅎ 믿어지지않는 지난시절 입니다. 그리고 1993년경에는 국제선비행기 화장실에서 담배를 태웠다는 사실 ㅋㅋ 믿거나, 말거나 ㅎ
저도 2000년대 초반 한의대 가려고 수능 봤다가 기절했다는 사실 ㅎㅎ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 사실입니다. 10년전 일본갔을 때 백화점 앞에서 담배피다 제지당하고 신기했는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었네요~!
담배에 관해서는 정말 선진국이 된 느낌입니다.정말 지금 생각하면 지하철 안에서 담배피는게 말이 안되는데...,
전두환 시절 사교육은 금지되엇지만 그 시절이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정말 좋은 시대 아니였나요?
물론 평등의 의미로는 좋지만 너무 초법적 요소가 있어서요.
그건 그렇긴 하죠...
근데 흙수저인 저로써는 오히려 그 상황이 반가울듯..
하지만 그 시절 학생들 인권을 생각해보면 공교육 100%가 좋은거인지는 다시 생각하게되는..
맞아요.,양면이 있는데 완전 인권이 무시되던 시대였으니깐요.
혹시 나중에 입시상담 해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닼ㅋㅋ
주옥 같은 글이 많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