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망하는 법.
게시글 주소: https://dev.orbi.kr/00017043298
시험을 망하는 법.
저는 고시공부 하면서 시험을 하도 많이 떨어져 몇 번을 떨어졌는지 세다가 까먹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시험을 잘 보는지는 알지 못합니다만 어떻게 하면 시험에 망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갑자기 출근길에 "시험 망하는 법을 알려 혹시 예전의 나처럼 공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도움을 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씁니다. (할 일이 너무 밀려 아주 마음이 죽을 것 같아 회피하는 것은 아니고요...)
라면 끓이는 법을 예로 들겠습니다.
1. 물을 끓인다.
2. 물이 팔팔 끓으면 면과 건더기 스프, 분말 스프를 넣고 4분간 더 끓인다.
3. 기호에 따라 달걀, 파 등을 넣어 먹는다.
그러면 이 내용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정리를 합니다.
어느정도 이해가 되면 물/면/스/달 하고 앞 글자를 따서 외우기까지 합니다.
공부를 오래 하면 여기에 물의 양은 라면에 따라 다른데 보통 500 ~ 550cc 정도라는 고급진 내용까지 알게 됩니다.
후배가 "형, 라면 끓이는 법 좀 설명해 주세요." 하면
질문이 끝나자마자 내용이 좔좔 입에 붙어 나오면서 "너 그런데 물의 양은 보통 500 ~ 550 인건 알지?" 하면서 잘난척까지 할 수 있습니다.
저도 후배들로부터 "저는 형이 왜 떨어지는지 모르겠어요." 소리 여러 번 들어 봤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시험장에 가면 문제가 이렇게 납니다.
"라면을 끓이는데 있어 물을 끓이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시오."
또는 약간 꼬아서 내면,
"라면을 끓임에 있어 물의 이중적 기능에 관하여 논함"
정답은 1. 면을 익히고 2. 국물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두 문구만 들어가면 내용이 아무리 적어도 최소한 과락을 면합니다.
건더기 스프와 달걀을 익히는 기능도 있다는 내용이 들어가면 추가로 가점을 받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공부를 하면 어찌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하여 손을 벌벌 떨다가 그냥 물/면/스/달을 좍 쓰고 나옵니다.
그런데 채점위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렇습니다.
"A를 묻는데 B를 잘 쓴 수험생의 답안지를 보면 '아 이녀석이 뭔가 착각을 해서 엉뚱한 것을 써서 그렇지 엉터리는 아니구나.' 싶은데, A를 묻는데 이것과 유사한 A'를 쓴 녀석을 보면 '아 이녀석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외우기만 했구나.' 싶어서 그냥 확 떨어 뜨리고 싶어져."
답안지는 꽉꽉 채워 넘치게 쓰고 나왔는데 점수는 과락입니다.
물론 위의 예는 예전 사법시험 2차 시험의 형태를 빌린 것이므로 객관식 시험 또는 다른 형태의 주관식 시험에는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으나 시험의 형태를 불문하고 시험 위원들의 관심사는 오직 한가지 입니다.
"이 수험생이 핵심적인 내용을 정확히 알고 묻는 말에 올바로 대답하고 있는가."
오늘의 결론입니다.
"아는 것과 익숙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시험은 망한다." 입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매번 시험을 망치면서도 올바른 반성을 하지 못하고 "문제가 지랄 같았다.", "너무 떨어서 다 아는 내용인데도 쓰지 못하고 나왔다.", "내가 답안지를 몇 장을 쓰고 나왔는데 도저히 이 점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등의 불평만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시험이든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은 제 말씀을 명심하시면 최소한 허무하게 낙방하지는 않고 올해는 떨어져도 내년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아는 것과 익숙한 것을 정교하게 구별하지 못하면 시험은 망합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좋은 글 추천!
션 선생님 감사합니다 ^^

좋은 글 천추!진짜 좋은글
프로불편러등장)
시험이 망하는법 or 시험을 망치는법.
시험을 망하는법 무엇?
망치 망치~!
앎이란 무엇인가..
N수를 할때 가장 주의할것) 자만하지 않기. 99퍼센트의 앎이 있어도 1퍼센트의 구멍이 있다면 그건 실패로 이어지죠
아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것들을 찾아가면서 공부해야겠군요!
덕분에 다시한번 되새깁니다...
아는것과 익숙한 걸 구분하는 효과적인 방법에는 뮈가 있을지 예시도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질을 꿰뚫는 말 같네요. 누구나 말하는 '남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결국 아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도 결국은 익숙해서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진정하게 아는 것을 구분하는 척도로써 남에게 설명하는 방법을 채택한 형태이지요. 또 몇몇 강사분들 께서는 이를 구분하는 방법으로써 백지에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 개념을 전부 적어낼 수 있도록 공부하라고 하십니다. 익숙함 속의 무지만큼 무서운 것은 없으니까요.
대학생인데 매우 큰 깨달음을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