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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린 [700004] · MS 2016 · 쪽지

2018-01-12 02: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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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현실적인 어느 동양사학자의 연구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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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 중, 고등학교 친구들이 필자를 만나면 늘 "요새도 지도 그리니?"라고 묻는다. 초등학교 5~6학년 때부터 공책이나 스케치북, 달력 뒷면에 열심히 지도를 그렸으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한반도와 만주를 지배하는 나라의 지도를 그리고 나라 이름을 '발해'라고 썼다. 그걸 본 아버지께선 "또 발해 그리니?"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하필이면 필자가 발해의 영토를 그릴 때만 지도를 보셨으니, '지도 그리기'와 '발해 그리기'가 동의어가 된 것이다. 발해를 특별히 좋아한 것도 아니고 사실 발해가 어떤 나라인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발해'를 주제로 한 지도를 많이 그렸다면, 아마도 발해의 영토가 가장 넓었다는 이유밖에 없었다.


 한국고대사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3수 끝에 동양사학과에 들어갔다. 입학 후 짝사랑의 대상이었던 '한국고대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자 나중에 『대륙에 서다』의 초고를 준비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당대(唐代) 중국에서 활동했던 고구려인 혹은 고구려인으로 오인할 수 있는 '고(高)'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의 본적(본관)이 발해였다. 그때는 단순히 이상하다는 생각만 했다. 동양사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후 중국 유학 중인 성웅이를 통해 구했던 중국정사 25사 가운데 『사기』부터 『구당서』, 『신당서』까지 통독하면서 전에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넘겼던 고구려인과 고씨, 고씨와 발해군이 각각 관계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발해'라는 국호가 막연히 고구려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석사과정에 들어가서 동양사학과 자료실에서 TA로 근무하던 2000년 한 후배가 갑자기 '발해' 국호의 어원에 대해 물어봤다. 필자는 당대까지 정사 사료를 읽었던 감을 바탕으로 고구려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대답해 줬다. 그때는 발해 국호가 중국사 연구자인 필자가 연구할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과 조교로 과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2004년에 중국의 '동북공정' 때문에 신문사와 방송사 기자들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 한국 중국사학계의 시각에서 '동북공정'에 대한 멘트를 따고 싶었던 기자들은 중국 고대사와 중세사 권위자들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조교의 역할은 그걸 막는 것이었다. 소위 '심기경호'였다. 자극적인 기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자들의 행태를 주변에서 지켜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평소에 발해의 역사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애국심 마케팅, 즉 내셔널리즘을 팔아먹으려는 언론사들의 얄팍한 심리 때문이었다.


(중략)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후 눈에 띄는 주제와 달리 필자의 추론과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좌불안석이었다. 그러나 우연히 발견한 사료 덕분에 필자의 불안감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중국 유일의 여성황제 무측천의 주나라(무주) 시기에 발해를 고구려와 동일시한 사료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2차 교정 중이었기 때문에 출판을 중지하고 새로 두세 개의 장을 더 추가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10장에 원고지 11매 분량을 추가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당의 발해 인식 변화와 신당서의 발해 '왜곡'에 대한 글은 훗날을 기약하고자 한다.


 이 책의 출판은 서강대학교 인문논총위원회의 연구비 지원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거듭된 구직 실패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비, 2012년 솔벗재단의 한국학 연구서 출판 공모에서 탈락한 후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서강대학교 인문논총 연구비 선정 소식을 들으니 가뭄의 단비를 만난 기분이 어떤 건지 느낄 수 있었다. 필자의 주제에 공감해 주신 인문논총 심사위원님들께 사의를 표하며 이 책을 바친다. 그리고 이 책의 출판과 교정 등 성가신 일을 잘 처리해 준 김영주 팀장님과 직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아울러 필자가 힘들었을 때마다 옆에서 힘이 되어 준 병한이 형과 성웅이, 진화, 기남이에게도 지면을 빌어 고마움을 전한다.


-최진열, 『발해 국호 연구』, 서강대학교출판부, 2015.




- 3수했는데 원하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입학할 성적이 안 돼 동양사학과에 입학 (당시에는 인문도 분할모집 했던 듯...?)


- 조교로서 기자들의 연구실 출입 방어


- 연구에 추가할 사항이 생겼지만 교정 중이었기 때문에 출판 수정이 불가능했음


- 서울대 출신 연구자지만 구직에 실패하고 연구비 타는데도 실패해서 겨우겨우 연명하며 의기소침한 상태



그 어떤 학자의 글보다도 '현실적'으로 와닿는 서문이어서 참 인상깊었던 기억이 있네요.


예전에 도서관에서 쭉 읽었지만, 간만에 도서관에서 다시 빌려봐서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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