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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EEN [315071] · MS 2016 · 쪽지

2010-01-18 00: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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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찬가 -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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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캔버스 위에서 하나의 나무를 보았다. 섬뜩한 느낌이었다.
 거의 무채색의 불투명한 부연 화면에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담한 모습의 고목(枯木)이 서 있었다. 그뿐이었다.
 한발(旱魃)에 고사한 나무──그렇다면 잔인한 태양의 광선이라도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태양이 없는 한발──만일 그런 게 있다면, 짙은 안개 속의 한발…… 무채색의 오톨도톨한 화면이 마치 짙은 안개 같았다.
 왜 그런 잔인한 한발이 고사시킨 고목을 나는 그의 캔버스에서 보았을까?













 우리는 실패자였다. 세상을 향한 첫 발걸음에는 좌절의 발자국이 찍혔다.









           









 출근 시간이 조금 지난 사당역은 여전히 북적거렸다. 아직 추위가 덜 풀린 2월 중순, 회색 롱코트가 무겁게 느껴졌다.
스크린 도어에 비친 나에겐 표정이 없었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나는 탑골공원의 비둘기 같았다. 전철은 아직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서 있는, 강남, 건대입구로 가는 외순환선 플랫폼에는 나 같은 사람이 많았다. 다른 데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플랫폼의 노란 점자 블록만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들. 검은 바탕에 흰색 세 줄이 그려진 아디다스 츄리닝을
입고 있는 저 사람도, 파란색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고 있는 저 사람도, 나랑 같은 처지일테다. 플랫폼에 한기가 도는 것
같았다. 애써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몸짓은 초조하기 그지 없는 우리들, 재수생, 실패자.

 스크린 도어 건너편의 내순환선 플랫폼은 한산했다. 사람들도 한층 여유있어 보였다. 똑같은 높이에서 마주보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저 쪽은 우리 쪽과는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동물원 우리 속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반대쪽 플랫폼의
사람을 응시했다. 동정인지 비웃음인지, 아니면 그 둘 다 아닌 무표정인지 알 수 없는 얼굴은 막 도착한 전철에 가려버렸다.





 교대역에 도착하자마자 전철 문 밖으로 꾸역꾸역 밀려 나오는 가방 맨 사람들의 행렬. 누구도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나 역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놓으며 학원을 향했다. 교대역은 2호선과 3호선 플랫폼이 ㄱ자 형으로 걸쳐져 있어서,
2호선에서 내리면 3호선 플랫폼 가장 끝 쪽에 있는 14번 출구까지 꽤 걸어야 한다. 강남대성으로 가는 학생들과는 갈라졌지만
이 쪽도 만만찮게 사람이 많았다. 마이맥 강남대성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 접어들자 양쪽 길 가로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걸음을 빨리했다. 마이맥 건물이 보였다. 1층에 큰 문구점이 있었고 그 좌우로 문이 있었다. 오른쪽 문은 상담실과
접수처, 왼쪽 문은 등원용 문이었다. 좁디좁은 왼쪽 문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꾸역꾸역 들어가고 있었다.

 건물에 들어서 보니 벽에 반별 강의실과 담임 선생님 안내가 붙어 있었다. 나는 인문 11반이었다. 강의실 403호, 담임
박보경. 여자인가? 다른 반의 담임 이름을 모두 살펴보니 전부 남자 이름이었다. 우리 반만 여자 담임인건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계단을 올랐다. 4층 복도는 반을 찾아 헤매는 학생들을 제외하면 한산한 편이었다. 403호에 들어서니 긴 교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에게서 한기가 느껴졌다. 싸늘한 교실에서는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 어딘가에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책상만 보고 있거나, 엎드려 있었다. 재수가 실감나기 시작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그것도 실패한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있으니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살처분 되기 전의 병든 닭들이 모인 닭장 같은 느낌이었다.

 앞줄 쯤에서 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고등학교 친구였다.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이 학원에서
재수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학교에서의 좋은 인연이 재수라는 힘든 경험까지 계속 되는구나.

 친구 옆과 뒤에는 자리가 없어서 몇 줄 뒤에 가 앉았다. 앉아서 주위를 둘러봤다. 우선 강의실 가장 앞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칠판. 천장에는 PDP TV가 달려 있었다. 칠판 앞에 하나, 교실 중간 쯤에 하나. 다른 강의실과 다르게 세로로
길어서 그런듯 했다. 왼쪽 벽에 커다란 달력, 오른쪽 벽에는 작은 시계가 걸려 있었고 다른 것은 없었다. 상아색의 조립식
벽만이 길게 늘어서 있을 뿐이었다. 단촐한 교실 안에 다양한 색의 옷을 입은 학생들이 촘촘하게 앉아 있었지만 내 눈에는 칙칙한
진회색으로 보였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한 고요가 교실을 둘러싸고 있었다. 나도 더 이상 어딘가에 시선을 맞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책상 위에 엎드려 있기로 했다.





 앞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곳곳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교단 위에 누군가 서 있었다.
담임 선생님인듯 싶었다. 하지만 여자는 아니었고, 오십 전후의 남자 선생님이었다.

 〃너희는 내가 여자인줄 알았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짧은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튼 보다시피 남자고, 음, 오늘은 나눠줄 게 많으니까 얼른얼른 하자.〃

 우선 호명한 순으로 나가서 학생증을 받았다. 등원시 출석체크를 위한 플라스틱 카드였다. 그리고 학원규칙 안내에 대한
프린트물을 받았다.


  1. 수업 시작 후에는 교실 입실 및 복도에서의 잡담을 일체 금한다.
  2. 학원 건물 안에서나 학원 주변에서는 일체 금연하며, 담배의 소지 자체를 금한다.
  3. 등원하면 당일 수업이 끝날 때까지 일체 외출 내지 조퇴를 금한다. 부득이한 경우 생활지도과에 비치되어 있는
   외출증 또는 조퇴증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발부받아 생활지도과에서 도장 날인 후 경비실에 제출하여야 한다. 또한 질병 이외의
   조퇴 사항은 오전 중에 미리 담임선생님께 알린다.
  4. 부득이한 사유로 지각이 불가피할 경우에는 담임 선생님과 생활지도과로 연락하며, 8시 이후에 등교시 반드시 생활지도과를 경유한다.
  5. 두발·복장은 언제나 단정히 하고(신발은 운동화, 농구화, 구두를 신도록 한다), 굽이 높은 구두나 슬리퍼, 운동복 차림(츄리닝)이나
   머리 염색(남녀 모두), 남학생의 귀걸이 착용 등은 금한다.
  6. 수업 중 껌을 씹거나 모자를 쓰고 있는 행위, 휴대폰을 사용하는 행위 등 수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모든 행위를 금한다.
  7. 창문을 통한 쓰레기 투기 행위를 금한다.
  8. 비상 계단의 출입은 비상시에만 가능하므로, 휴식시간이나 귀가시의 이용을 금한다.
  9. 오후 자율 학습 시간(오후 4시∼6시) 및 저녁 자율 학습 시간(오후 7시∼10시)중에는 조퇴ㆍ외출 허용되지 않는다.(타학원 수강시 조퇴 불허)
  10. 토, 일요일은 7시50분 이전에 입실하여야 하며, 점심시간과 저녁시간 이외에는 외부 출입을 불허한다.
  11. 자율 학습 시간에 만화책을 보거나 기타 오락 행위 등을 금한다. 


 물론 이런 류의 생활 지도는 기선 제압이 목적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제도는 어떻게든 피해나갈 방법이 다 있는 법이다.
츄리닝이나 슬리퍼 등의 규정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애들이 있는 듯 했지만 결국 사람답게는 하고 다니자라는 의미로 넣은 규정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는 몇 가지 서약서와 추가 비용 납부에 대한 안내문 등이 뒤따랐다. 자기 소개서와 수능 성적기입표도
받았다. 마지막으로 시간표와 굿모닝 마이맥 방송 교재를 받았다. 그리고 몇 가지 안내를 더 듣고 첫 날 오리엔테이션은 끝났다.










 교대역 14번 출구 앞, 학교 동창들끼리 모였다. 전부 다섯 명. 학교에서 즐겁게 놀던 날들이 바로 얼마 전인데 다같이 이 곳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이틀 전 졸업식에서 만난 친구들은 그 새 2년은 늙은 것만 같았다. 다들 재수라는 현실에 쓰게 웃으면서,
점심 메뉴를 정했다. 교대쪽으로 쭉 내려가서 사거리까지 가니 미스터 피자가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주위에 우리와 같은
재수생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보였다. 재수를 하게 되니 눈에 재수생들만 보이는 것 같았다.

 〃아 근데, 이번에 재수 하는 애들 많지 않냐?〃
 〃그러게. 근데 왜 이렇게 애들이 없어?〃
 〃○○이랑 △△는 아직 등록 안해서 좀 늦게 온다던데.〃

 아무래도 같은 고등학교 동창들의 소식이 신경쓰일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대학 합불 여부는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소식은
물어보기도 껄끄럽고 스스로도 썩 당당한 상황이 아니었다. 모인 애들끼리 각자의 정보를 취합하니 어느 정도 재수의 판도가 그려졌다.
끊임없이 대화하지만 마음 속 한 켠이 불안한 것이, 그닥 편한 식사는 되지 못했다. 한 시 조금 지난 시각, 모두 다음날부터의
긴 싸움을 준비하러 집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받아온 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안내사항, 그리고 시간표, 굿모닝 마이맥 교재…… 자기소개서를 본다.
여러가지 잡다한 항목이 A4 종이 한 장에 가득차 있다. 자신 있는 과목은 언어, 사회문화. 취약 과목은 수리. 서술형 문제도 있다.
상담용 자료인가, 하며 칸을 열심히 메꿨다. 목표 대학 란도 있었다. 깊게 고민 할 것도 없었다.


     가 군 :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예상은 했지만 내가 봐도 한심한 성적을 보면서 공부할 마음이 없어졌다. 생각해보면 정말 1학년이나
2학년 때는 공부한 날이 공부를 안한 날보다 적었던 것 같다. 수학은 공통 수학을 대충 해 둬서 1학년 때는 어찌어찌 넘겼다.
하지만 영어는 답이 없었다. 학교에 한국인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한 반의 3분의 2 이상이 외국 거주 경험이 있는 학교,
토플 평균 점수가 247점인 학교. 공부할 의욕이 없었다. 아무리 해봐야 제자리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 성적표 중 일부. 영어독해 8등급, 작문 7등급, 회화 9등급.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잡기(雜技)가 늘었다. 포토샵과 파워포인트 활용 능력이 프레젠테이션 과제로 이어졌다. 사진 찍는 취미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동영상 편집까지 손이 뻗쳤다. 프레젠테이션 과제를 계기로 학교 공식 행사에서도 영상을 담당하게 됐다. 연출에 관심이
생기고 모션그래픽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그려준 그림을 본 선생님께서는 치어리더부의 유니폼 디자인을
부탁하셨다. 영문잡지부에서 편집디자인을 맡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미대를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외국어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내가 생각한 진로였다.

 하지만 실기를 준비한다는 건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했다. 기숙사에서 살았기 때문에 매일 외출해서 30분 이상 걸리는 미술학원을 갔다
오면 진이 빠져있을 수 밖에 없었다. 미술 실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일이었지만 나름 즐거운 생활이었다. 좀 더 유쾌하고 좀 더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을 계속하는 건 고행과도 같았다. 결국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겨울, 미술 실기를 포기했다.
미대를 가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를 생각했다. 홍보도 영상도 있는 학부니까, 만약 내 생각과는 달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과의 연관이
전혀 없진 않을거라 생각했다. 내 고등학교 3학년의 목표는 언론홍보영상학부였다. 재수를 시작하면서도 그 목표는 바뀌지 않았다.
한 번은 실패했지만 두번째에는 꼭 성공하고 싶었다.

 그렇게 옛날 생각, 재수 생각에 뒤척이며 그 날 늦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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