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식

70일 문돌이 [730406] · MS 2017 · 쪽지

2017-09-16 20:56:36
조회수 357

너없이도 행복한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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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면 글이 잘 써지지 않더라



한 동안 몇 개월을 밤잠을 설쳐가며 글을 써대었다

상처에 문장이라도 덮지 않으면 도무지가 버텨낼 수 없을 듯 하여

대문 밖으로는 걸음조차 하지 않고 밤잠을 설쳐가며 나는 글을 써대었다



초라한 나는 한 조각 목숨까지도 너에게 매어 있던 까닭에

우리 기억이 헝클이는 대로 비틀거리고 휘청거리며 밤마다 눈물로 흐드러지고

보조 바퀴 없이는 자전거에 오르지 못하는 어린 아이마냥 나의 인생은

언제쯤 너 없이도 홀로 세상에 우뚝 서게 되는 날이 올까,

정처없는 영혼은 매일을 침전하며 항상 너를 전전하며 사랑에 고전만을 반복하여



밤마다 내 마음은 눈물에 잠겨서

잠긴 마음에 노를 젓듯 펜 하나 부여잡고

추억이라는 작은 조각배 하나에 위태로이 올라탄 채

눈물이 자꾸 밀려와 뱃전에 부딪혀 하얗게 하디얗게 부서질 때마다

슬픔의 대양에 표류하며 노를 잡은 나는 비로소 조난의 공포를 써내려가고는 하던 것인데,



어느덧 그것이 벌써

일 년 하고도 육 개월이 더 지나서

항해에 능숙해진 선장은 몇 개의 섬을 더 보았더라

사실 나는 아직도 간혹 너를 닮은 섬을 보면 눈앞이 아찔해지고

영영 지워낼 수 없을 뜨거운 파도의 기억에 마음이 움찔하고는 하는 것이지만



항해하는 선장은 이제 사랑하는 대륙이 있어서

다른 섬에 관심을 가질 겨를은 추호라도 나질 않으니

부디 그대도 과실 없이 바람만 가득한 무인도로 남아 있지는 말라



행복하면 노가 잘 저어지지 않더라

요즘은 글이 잘 써지지 않더라





일생을 절필하여도 좋으니

다시는 노를 젓지 못하여도 좋으니

이제는 영영 섬을 밟지 못하여도 좋으니



우리 행복하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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